정보 상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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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정보 | JGS_000136 / 영조어필/준천가 | ||
* 명칭 | 영조어필/준천가 | 이명칭 | |
개요 | 영조의 준천공사에 대한 기쁨과 채제공의 시 |
본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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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 | 영조어필 | ||
내용#1 |
“준천 공사를 끝마친 것은 경들이 정성을 다했기 때문이다. 나는 광무제에게 들었노라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루어낸다(濬川功訖, 卿等竭誠, 予聞光武, 有志竟成).” 라고. 영조가 1760년에 있었던 청계천 바닥을 파내는 준천 대공사를 기념하여 만든 『준천계첩』이란 책에 실린 사언시(四言詩)입니다. 한번 망했던 한나라를 다시 일으켜 부흥시킨 광무제를 언급하면서 성공적으로 마친 대역사(大役事)를 기뻐하고 있습니다. 17세기에 들어서 청계천은 오랜 세월 쌓인 토사로 인해 물길이 막히고, 비가 오면 도성에 큰 피해가 되었습니다. 영조 때에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영조는 고심하다가 하천바닥을 퍼내는 준천공사를 결정합니다. 57일간 20만이 넘는 사람들이 동원된 엄청난 공사였습니다. 공사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얼마나 기뻤던지 몇 번에 걸쳐 잔치를 열었습니다. 영조는 자신의 치세기간에 일어난 준천공사에 대한 기쁨을 이 시에 표현하였습니다. 1773년에 왕세손(훗날 정조)을 데리고 광통교에 가서 준설 담당 신하들을 치하하며 또다시 시를 지어 내렸는데, 그에 답하는 시를 올리라고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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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 | 채제공의 준천가 | ||
내용#2 | 영조가 실시한 준천사업의 의미를 노래한 채제공의 준천가는 채제공의 문집 '번암집'에 실려 있습니다. 영조는 훗날 정조가 되는 세손에게 채제공은 진실로 나의 사심 없는 신하이고 너의 충신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채제공은 정조 때 영의정을 지냅니다. 채제공의 준천가에는 조선 개국 초기 터를 잡은 한양과 태종의 개천 공사, 350여 년간 준설하지 않아서 수해가 극심한 개천이 서술되어있고, 영조의 결단과 치수사업에 대한 찬양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
상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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