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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S_000127 / 청계천은 조선여인들의 빨래터
* 명칭 청계천은 조선여인들의 빨래터 이명칭
개요 청계천 빨래터는 조선 여인들의 쉼터

본문 정보
제목#1 청계천은 조선여인들의 빨래터
내용#1 아동문학가 윤석중은 1911년 청계천 수표동에서 태어나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는 “청계천은 이름 그대로 맑은 시내여서 아낙내들이 나와 그 물에 하얀 옷을 빨았어요. 청계천은 곧 세탁소 같은 구실을 했으며 살림살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아낙네들의 사교장이기도 했지요.”라고 유년 시절을 회고했습니다. 또 그는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멀리멀리 퍼져라~’로 시작하는 동요 ‘퐁당퐁당’은 청계천에서 빨래하던 누나를 회상하면서 지은 동요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청계천은 한성의 하수도로 더러운 똥물이 흘렀다고 전해지는 이야기와 너무도 다릅니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마을마다 공동우물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위생관리가 철저한 편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청계천은 아주 가물 때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깨끗한 물이 흘렀습니다. 특히 비가 온 뒤나, 여름철에는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습니다. 조선 시대 여인들은 청계천에 나와 빨래를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빨래는 여인들에게 노동이었지만 방망이로 빨래를 내리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청계천 빨래터는 여인들의 쉼터였습니다.
청계천에 하수도가 연결된 것은 1923년 일제강점기 때입니다. 일제는 정릉 신장석으로 이루어진 광통교 북측 교대 한가운데를 뚫어 콘크리트로 된 큰 하수관을 박아서 하수를 청계천으로 배출했고, 남쪽 교대에도 하수관을 박았습니다. 그 뒤로 청계천에 오물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청계천에 유료 빨래터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24년입니다. 경성부에는 200명이 한꺼번에 이용할 수 있는 공설 빨래터를 만들고, 10전씩 사용료를 받았습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조선 여인들에게 빨래터는 쉼터가 아니라 돈을 내고 빨래를 하는 노동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상세 정보
시대분류
주제분류
연계비콘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청계천
지역
전화번호
지정현황
휴무일
이용시간
이용요금
주차
장애인 편의시설
체험안내
안내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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