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상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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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정보 | JGS_000126 / 청계천 본류와 생활 | ||
* 명칭 | 청계천 본류와 생활 | 이명칭 | |
개요 | 서민문화의 중심지-중촌과 시전, 술집, 전기수 입담이 있는 곳 |
본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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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 | 중촌 | ||
내용#1 |
청계천 본류의 장통교에서 수표교까지를 중촌이라고 합니다. 중촌에는 중인들이 주로 살았고, 시전이 조성되어 있어서 상인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청계천 본류 서쪽을 웃대, 오간수문일대를 아래대라고 불렀습니다. 아래대에는 훈련원이 있어서 하급군인이 중심세력이었습니다. 남산 근처 남촌에는 일반양반과 하급관료들이 주로 살았습니다. 평민은 본류와 하류, 지류에 군락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중촌에서는 역관과 의관이 많았는데요, 역관들은 부유하고, 박식하며, 국제정세에도 밝았지만 신분차별로 인해 중간계급 이상의 사회적 역할은 기대하기 힘들었습니다. 역관들은 청나라로 부터 서양문물을 접하면서 양반사대부들 보다 먼저 서양과학을 배우고, 서학을 번역하고 천주교신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개화사상에 눈을 떴습니다. 유대치와 오경석의 개화사상은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와 김옥균, 박영효 등 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 개화당이 탄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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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 | 방각본 | ||
내용#2 | 조선후기에는 광통교 주변과 정동, 명례방(명동) 일대에는 서적과 그림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광통교 주변 청계천변에는 상인들이 판매를 목적으로 간행한 방각본이 크게 유통되었습니다. 방각본에는 학습서도 있었지만 <심청전>,<금방울전> 등 한글 소설이 최고 인기였습니다. 이 소설들은 일반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조선 후기 상공업의 발달로 인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서민들이 누렸던 그들만의 문화였습니다. | ||
제목#3 | 전기수 | ||
내용#3 |
조선 후기 청계천 다리 밑과 담배 가게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방각본 한글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사람인 전기수(傳奇叟) 토크 콘스트가 열렸습니다. 전기수가 들려주는 한글소설 중에는 <춘향전>과 같은 연애소설과 <임경업전>과 같은 영웅 이야기가 특히 인기가 많았습니다. 18세기 후반에는 전기수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중촌의 부잣집에서는 전기수를 초빙해서 이야기를 들었고, 일반 백성들은 저잣거리에서 단체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기수들은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는 곳에서 입을 다물어 손님들의 궁금증을 한껏 키워 놓은 뒤, 손님들이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돈을 내게 만들었습니다. 정조 때, 어떤 사람은 청계천변 한 담배 가게에서 전기수의 이야기를 듣던 중, 너무 몰입한 나머지 영웅이 뜻을 이루지 못한 대목에 이르러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풀 베던 낫으로 전기수를 죽게 했다고 합니다. 사대부 가문의 부녀자들까지도 전기수를 불러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때 남자 전기수는 쓰개치마와 가벼운 여장을 하고 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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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4 | 왈자 | ||
내용#4 | 청계천변을 비롯한 중촌에는 술집도 많았습니다. 정조 때는 금주령이 완화되면서 ‘큰 술집이 골목에 차고 작은 술집이 처마를 잇대었다’할 정도로 술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조선 시대 유흥가를 주름잡고 다녔던 이가 있었으니, 이들을 일러 ‘왈자’라고 했습니다. 술집과 기방을 드나들면서 돈을 물 쓰듯 하고, 힘이 세고 싸움도 잘했습니다. 양반 중에서 무반(무신) 출신의 왈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역관이나 의원, 별감 등의 중인들이었습니다. |
상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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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분류 | |||
주제분류 | |||
연계비콘 | |||
지번주소 | |||
도로명주소 | 서울특별시 청계천 | ||
지역 | |||
전화번호 | |||
지정현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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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시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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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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