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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S_000122 / 무학교
* 명칭 무학교 이명칭
개요 무학대사와 한양도읍 설화

본문 정보
제목#1 무학교
내용#1 무학교는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왕십리 근처에 건설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무학교의 남쪽에는 무학로가 있고, 무학로의 끝에는 넓은 벌판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무학대사(無學大師)와 관련된 한양도읍 설화가 전하고 있습니다.
제목#2 한양도읍 설화
내용#2 1392년 조선을 세운 태조는 수도를 새로운 곳으로 옮기려 했습니다. 무학대사가 왕명을 받아 먼저 계룡산을 살폈지만, 산이 사방에 둘러싸고 있어 적의 침입을 막기는 유리하지만 교통이 불편해서 도읍지로는 맞지 않았습니다. 곧 한양으로 와서 뚝섬 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자 넓은 들판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땅이 넓은 데다 한강이 있어 교통도 편리한 이곳이 새 나라의 도읍지로 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무학대사 옆으로 한 노인이 소를 몰고 지나가면서 다음과 같이 소리쳤습니다. “이놈의 소! 미련하기가 마치 무학 같구나. 바른 길을 버리고 어째서 엉뚱한 길로 가려고 하느냐?”
무학은 깜짝 놀라 노인을 붙잡고 이유를 묻자,
“무학이 새 도읍지를 찾아다닌다는데, 좋은 곳 다 놔두고 엉뚱한 곳만 찾아다니니 어찌 미련하고 한심한 일이 아니겠소.”
이 말은 들은 무학대사는 공손히 합장을 하고 물었습니다.
“제가 그 미련한 무학입니다. 저는 이곳을 도읍지 삼기에 적당하다고 봤는데, 노인장 생각은 어떠십니까?”
“여기서부터 딱 10리를 더 들어가서 주변을 살펴보시오.”
이 말만 하고 노인은 소를 몰고 가버렸습니다.
무학은 노인의 말을 듣고 십리를 더 들어가서 보니 정말로 도읍지로 삼기에 적당한 곳이 있었습니다. 무학은 태조를 만나 한양이 새 도읍지로 적당하다고 했습니다. 태조는 무학대사의 말에 따라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궁궐과 도성을 쌓았습니다. 사람들은 무학대사가 노인을 만났던 곳을 ‘십리만 더 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왕십리(往十里)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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