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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S_000120 / 황학교
* 명칭 황학교 이명칭
개요 가난한 시절 여인이 머리카락을 내다 팔던 곳, 골동품시장, 도깨비시장

본문 정보
제목#1 황학교
내용#1 신선이 타는 황학이 날아왔다는 전설이 있는 황학동과 청계천 북쪽을 이어주는 다리가 황학교입니다. 2005년 청계천 복원 사업 때 새로 만든 다리입니다.
제목#2 여인들이 머리카락 잘라 팔던 시장
내용#2 6·25전쟁 이후 피난민들은 황학동 근처 청계천변에 판잣집을 짓고 정착하였고 노점과 고물상으로 생계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골동품까지 취급하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황학동시장은 먹고살기 어려웠던 여인들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파는 시장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머리카락은 가발로 만들어졌는데, 1960년대 주요 수출품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배내머리라 하여 백일 때 머리카락를 자르고 난 후에는 머리카락를 자르지 않았습니다. 시집가서는 평생 쪽머리를 하면서 길렀습니다. 1895년 단발령에도 여성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고, 신여성이라고 불리던 여인들 외에는 그런 풍습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여성들에게 머리카락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머리카락을 잘라서 짚신을 삼는다”는 속담이 있었습니다. 아주 귀한 머리카락을 가지고 제일 험하게 쓰이는 신발을 삼는다는 것은 그만큼 고마운 사람에게 보은할 때나 머리카락을 쓴다는 뜻입니다. 그런 소중한 머리카락이었지만 가난한 시절 더 이상 팔게 없으니 여인들은 머리카락을 팔아 버거운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제목#3 벼룩시장
내용#3 1969년 청계천 복개공사로 판잣집들이 철거되고 황학시장에 허가 받은 골동품점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골동품 상인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수집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보급보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70년대 말 골동품상인이 대전의 한 고물상에서 농경무늬청동기를 사들였습니다. 보물 1823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습니다. 상인들이 골동품을 모으기 위해 벼룩처럼 전국을 뛰어 다닌다고 해서 이때 황학시장을 벼룩시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제목#4 도깨비 시장
내용#4 1983년 장안평에 고미술품 집단 상가가 만들어지면서 황학시장의 골동품점들이 빠져나갔습니다. 그 자리에는 노점상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급속도로 증가했습니다. 이때부터 황학동시장은 도깨비시장 또는 개미시장으로 불렀습니다. 도깨비시장은 노점상들이 단속하는 공무원을 피해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금방 다시 나타나고, 낡은 물건들이 황학동시장에만 오면 새 것으로 둔갑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개미시장은 노점상들이 개미처럼 버리는 것 없이 물건을 부지런히 모으기 때문에 생긴 이름입니다.
2003년 청계천 복원 사업이 시작하면서 황학시장에 있던 노점들은 폐쇄된 동대문운동장 내에 천막으로 된 ‘동대문풍물시장’을 만들었는데 그곳으로 이전했습니다. 풍물시장으로 옮겨가지 못한 노점상들은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동묘 앞으로 옮겨서 벼룩시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목#5 여인시장과 정순왕후의 끼니
내용#5 동묘벼룩시장은 조선 시대 ‘여인시장’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1456년에 상왕복위사건으로 단종은 영월로 귀양을 가고,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는 숭인동 정업원에서 살았습니다. 궁에서 쫓겨난 정순왕후는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여인들이 정순왕후를 돕기 위해 채소시장을 만들었습니다. 이 시장에는 정순왕후가 직접 재배한 채소를 팔았다고도 하고, 여인들이 시장에서 채소를 팔아서 정순왕후에게 먹거리를 전했다고도 합니다. 채소시장은 남자들이 출입할 수 없는 시장이라서 ‘여인시장’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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