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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S_000119 / 영도교
* 명칭 영도교 이명칭
개요 단종과 정순왕후의 비극이 서린 다리

본문 정보
제목#1 사람들을 맞이하고 배웅하던 영도교
내용#1 조선 시대 동대문 근처에서 한강의 광나루로 가기 위해서는 영도교를 지나야 했습니다. 영도교를 지나 중랑천 살곶이 다리를 건너면 광나루에 도착하는데, 광나루는 한강을 통해 강원도와 남쪽 지방으로 가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었습니다. 광나루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영도교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맞이하는 곳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신하들도 영도교에 나와서 왕의 행차를 배웅하고 맞이하였습니다.
영도교는 원래는 왕심평대교였는데 이름이 바뀐 사연이 있습니다. 단종과 정순왕후의 비극적인 이별이 있는 다리입니다.
제목#2 단종과 정순왕후의 이별
내용#2 단종은 1452년 11살에 왕이 되어, 2년 후 한 살 많은 정순왕후와 결혼을 했습니다. 또래였던 둘은 유난히 사이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바로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 때문이었습니다. 1455년에 단종은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다음해 단종복위사건으로 홀로 강원도 영월에 유배 됩니다. 이때 단종과 정순왕후는 왕심평대교에서 눈물을 흘리며 헤어졌습니다. 단종은 귀향 간 지 4개월 만에 살해 되었고, 정순왕후는 단종을 평생 그리워하다가 82세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왕심평대교를 영원히 이별했다고 해서 ‘영이별다리’, ‘영영 건넌 다리’라고 했습니다. 후에 세조의 손자인 성종은 ‘길이길이 사람들이 건너는 다리’라는 뜻의 영도교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제목#3 조선 후기 상여가 지나는 다리
내용#3 영도교는 조선 후기에 죽은 사람이 건너는 다리로 유명했습니다. 도성에서 공동묘지가 있는 동망산(東邙山)으로 갈 때는 시구문(屍軀門)인 광희문(光熙門)을 지나 영도교를 지나야 하는데, 영도교에는 날마다 상여 행렬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제목#4 영도교
내용#4 영도교는 조선 26대 왕인 고종 때 경복궁 건축 석재로 사용하기 위해 헐렸습니다. 그 뒤 1933년 일제에 의해 콘크리트 다리로 세워졌다가, 1958년 청계천 복개 공사 때 사라졌습니다. 지금 영도교는 2005년 청계천 복원 공사로 새로 만든 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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