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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S_000108 / 수표교
* 명칭 수표교 이명칭
개요 조선시대 홍수경보시스템인 수표가 설치된 수표교

본문 정보
제목#1 조선시대 홍수경보시스템 수표
내용#1 1441년 세종23년 음력 8월 18일 한성에 큰비가 내려 청계천에 홍수가 나서 주변 주택이 물에 잠기는 등 수해(水害)가 발생했습니다. 청계천에 수위를 미리 측량하여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서 수표가 필요했습니다. 세종은 마전교(소와 말을 파는 시장인 마전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서쪽에 나무로 만든 수표를 설치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수표에는 한쪽에 척(尺), 촌(寸), 분(分)을 새겨서 수심을 정확하게 잴 수 있게 했습니다. 나무로 만든 수표는 성종 때 돌기둥으로 교체되었습니다. 현재 세종대왕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는 수표는 한쪽에 10척까지 눈금을 새겨져 있고, 다른 쪽에는 3척과 6척, 9척에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그 당시 1척은 대략 23cm였는데, 3척은 가뭄을 알리는 것이고, 6척은 보통, 9척은 홍수를 의미했습니다. 수표는 청계천 범람을 미리 알려주는 조선식 홍수경보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표를 설치하고 난 뒤로 마전교를 수표교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수표교 근처에 있던 마전은 영조 때 태평교 근처로 이전했는데, 이때부터 태평교를 마전교라고 불렀습니다. 2005년 새로 건설한 마전교는 수표교에서 1km 내려가면 있습니다.
제목#2 수표교에서 본 미인에 반한 숙종
내용#2 조선 후기 수표교는 창덕궁에서 오늘날 중구 저동에 있었던 영희전(永禧殿)으로 가는 통로였습니다. 영희전은 조선 왕 중에서 태조와 세조, 원종(인조의 아버지), 영조, 순조의 초상화를 봉안했던 곳입니다. 설날, 한식, 단오, 추석 등의 명절이 되면 왕은 수표교를 건너 영희전에 참배하러 갔는데, 수표교 근처에는 왕의 행차를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야사에는 숙종이 영희전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수표교에서 한 여인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숙종은 그 여인을 잊지 못해 뒤에 궁으로 불러들였는데, 그 여인이 바로 장옥정이었습니다. 훗날 숙종의 후궁 장희빈이 된 유명한 여인입니다. 그러나 실록에 의하면 장옥정은 대비전 나인으로 들어갔고 궁에서 숙종을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장옥정의 미모를 일컬어 숙종실록의 사관은 “자못 얼굴이 아름다웠다.”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제목#3 원형대로 보관되어있는 수표와 수표교
내용#3 수표와 수표교는 1958년 청계천 복개 공사 때 장충단 공원으로 함께 옮겼는데, 수표만 다시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겼습니다.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수표와 수표교는 2005년 청계천 복원 때 제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복원한 청계천은 조선 시대 청계천보다 폭이 좁아서 수표교 길이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청계천에는 임시다리라는 의미로 만든 나무 수표교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장충단 공원에 있는 수표교와 세종대왕기념관에 있는 수표가 제자리 찾을 날을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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