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1 |
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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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1 |
지금 광교자리에는 조선시대 광통교가 있었습니다. 2005년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광교를 세우고, 원형일부가 남아 있던 광통교는 청계천 상류 방향으로 155m에 옮겨서 복원했습니다. 광교는 광교 북쪽 종로와 남쪽 숭례문으로 가는 큰 길을 잇는 다리로써 차량과 사람의 이동량을 고려해 새로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광통교의 별칭인 광교라고 명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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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 |
조선 도성의 중심통로였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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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2 |
조선 시대 지금의 광교자리에 있던 광통교는 경복궁에서 ‘육조거리’, ‘종루’와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중심 통로로, 왕이 행차를 할 때나 중국사신이 숙소인 태평관에서 경복궁에 들어갈 때 주로 이용하는 다리였습니다. 왕이나 사신단 행차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동했습니다. 이때 원활한 통행을 위해 특별히 광교는 다리의 길이보다 폭을 더 넓게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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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3 |
광교와 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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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3 |
광교 북쪽에는 조선 시대 최대 시장인 시전이 있었습니다. 시전은 태종 13년인 1413년에 1,360칸으로 완성된 이래로 500년 동안 거의 매일 열렸습니다. 시전의 점포들은 오직 한 종류의 상품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다양한 점포들이 있었습니다. 시전 골목은 복잡하고 길었습니다. 시전 골목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많이 모인다고 해서 시전이 있는 종로를 구름‘운’자를 써서 ‘운종가’라고 불렀습니다. 시전 상인 아들은 가업을 잇기 위해 어릴 적부터 시전에 나와 장사를 배웠는데 이를 ‘아시출시(兒時出市)’라고 불렀습니다. 시전에 와서 사려는 물건을 못 찾아 헤매는 손님이 있으면 “무엇을 사러 오셨냐?”고 묻고 상인과 흥정을 붙여서 차액을 받는 ‘여리꾼’도 있었습니다. 광교는 시전에서 물건을 팔거나 사려는 사람,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습니다. 광교는 옛날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청계천에 있는 22개의 다리 중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은 다리인데, 현재에도 ‘넓게 통하는 다리’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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