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1 |
사람은 다리를 건너고 다리는 수량을 측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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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1 |
수표교는 세종 2년인 1420년에 만들어진 다리입니다.
수표교가 만들어질 당시 이 지역에는 소와 말을 사고파는 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마전교라 했습니다. 세종 23년인 1441년,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수표를 만들어서 다리 서쪽에 세웠고 이때부터 수표교라 불렸습니다.
영조 36년인 1760년에 청계천에 규모가 큰 준설공사를 하면서 3m가량의 돌기둥을 세웠습니다.
이 돌기둥에 눈금을 만들어 수위를 4단계로 측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수표교 곳곳에는 정해개조, 무자금영개조 등의 글씨가 있는데, 이를 통해 여러 차례 개보수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난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로 홍제동으로 잠시 이전되었다가 1965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왔습니다.
조선시대의 수표교는 물을 건너는 다리 본연의 기능으로서 뿐만 아니라 수량을 측정하여 홍수를 조절하는 구실도 하는 중요한 다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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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 |
아름답고 과학적인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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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2 |
수표교는 길이 27.5m이며 폭은 7.5m, 높이 4m에 화강석으로 만든 석재를 가구식으로 짜 맞춘 구조입니다. 기둥 아래의 돌기둥은 2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위는 고르게 다듬은 네모난 돌이고 아래는 거칠게 다듬은 네모난 돌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특히 위의 돌 모서리는 물의 방향과 마주하게 배열되어 있는데, 이는 저항을 줄여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을 위한 설계입니다. 수표교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난간은 궁궐 등 격식이 필요한 다리에만 설치되던 것으로 일반적인 다리에 난간을 만드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다리 난간은 연꽃과 연잎 등을 주제로 만들었고 이는 조선시대 돌난간의 전형적인 형식으로서 그 모양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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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3 |
과거 차이나타운이었던 수표교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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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3 |
수표교는 중국하고도 인연이 있습니다. 서울에 중국인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1882년 임오군란 이후부터입니다. 이들은 정착 초기에 수표교 남북 지역에 집단으로 거주했다고 하는데요. 1970년대까지 이 근방의 지역은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한 차이나타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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