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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120 / 대장간거리
* 명칭 대장간거리 이명칭 풀무재
개요 대장간거리는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39길 일대를 일컫는 말로, 한때는 160여 개에 이르는 대장간이 고갯길 좌우 언저리에 늘어서서 성업한 데에서 그 명칭이 유래한다. 풀무재, 풀무질고개, 대장고개 등으로도 불렸던 곳이다. 지금은 대장간이 5곳 정도만이 남아 있다.
설명 대장간거리는 조선시대 대장간이 밀집되어 있어 풀무재라고 불리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39길 일대를 가리킨다. 광희문(光熙門)에서 신당역 방향으로 가다보면 맞닥뜨리게 되는 한양공업고등학교(漢陽工業高等學校) 3거리 좌우측이 바로 그곳이다. 지금 퇴계로의 광희문쪽 내리막길에서 벽산빌딩 부근은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100여 개 이상의 대장간들이 모여 벌겋게 달구어진 쇠를 때리는 소리로 요란해 풀무재[冶峴]로 불리었던 곳이다. 지금의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자리는 옛 훈련도감(訓鍊都監) 소속의 군영지였다가 나중에 신식군대인 별기군(別技軍)이 훈련장으로 사용하였던 곳이다. 당시 군사들이 사용할 무기를 대장장이들이 만들었는데, 대장간거리가 형성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러다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이곳의 무기제작 역시 줄어들게 되었다. 이후 대장간의 감소한 무기 수요를 대체한 것은 농기구나 작두 같은 신물(神物)의 제작이었다. 농기구는 농민들이 농사에 필요했고, 작두 등은 이른바 시구문(屍口門)인 광희문 일대에 몰려 있던 신당, 즉 무당들이 필요로 했던 신물이었던 까닭이다. 1960년대에는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을 복구하기 위해, 또 1970년대에는 새마을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건물 해체에 사용할 해머 등 건축장비의 생산으로 160여 개에 달하는 대장간이 번성하였다 한다. 그러다 중공업의 발달과 함께 대장간은 쇠락을 거듭하여, 지금은 5곳 정도만이 농기구 등을 만들며 대장간거리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정보 1593 훈련도감설치 1881 별기군설치
시대분류 조선/1593년 이후
주제분류 장소 및 시설/관광지 및 휴양, 수련지역/문화의거리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39길 77(신당동 233-37)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시작일(발생일) 1593년 이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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