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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106 / 유창렬 가옥
* 명칭 유창렬 가옥 이명칭
개요 유창렬(柳昌烈, 1898~1968) 가옥(家屋)은 우리나라 범패(梵唄)의 명인인 유창렬이 1960년경에 거주했던 건축물이다.
설명 유창렬(柳昌烈, 1898~1968) 가옥(家屋)은 우리나라 범패(梵唄)의 명인인 유창렬이 1960년대에 거주했던 건축물로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20길 58에 위치한다. 건물 자체는 철근콘크리트조를 기초로 붉은 벽돌로 벽을 세웠으며, 대리석 등의 석재를 사용하여 치장하였다. 건물의 후면부에 건축 당시에 만들어졌던 목재창 등을 발견할 수 있고, 지금은 의류업체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범패(梵唄)는 ‘인도[梵]의 소리[唄]’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말한다. 유창렬은 범패 명인으로서 1898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11살 때부터 서만월(西滿月)의 제자 이범호(李梵湖)로부터 범패를 배웠는데, 1년 뒤에 중강(中講, 국악 형식에서 중간 가락의 마디)이 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16살 때 구례군수의 49재가 백련사(白蓮寺)에서 열렸을 때, 짓소리 중 가장 어렵다고 알려진 ‘지반지심(志盤至心)’의 장부(丈夫)를 잘 수행하여 스승을 놀라게 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21살에 백련사의 어장(魚丈)이 되었고, 이후 여러 곳에서 범패를 가르쳤으나 제자를 양성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광복 이후에는 환속하여 각종 사업에 종사하였다. 1955년에 국립국악원(國立國樂院)에서 가곡을 배운 것이 계기가 되어, 1960년대 초에 자신이 아는 모든 범패를 녹음하여 국립국악원에 두기도 했다. 1965년 9월 25일 서울 청량사(淸凉寺)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조사를 위한 상주권공재(常住勸公齋)가 열렸는데, 이때 김운공(金耘空)·박송암(朴松庵)·한동희(韓東熙)·윤동화(尹東和)·강동진(姜東振) 등과 함께 범패를 불렀다. 이를 한만영(韓萬榮)이 ‘범패 : 상주권공’으로 채보하여 남겼다고 한다.
역사정보 1950년대 건축 1960년대 범패 명인 유창렬 거주
시대분류 현대/1950년대
주제분류 문화/인물/민가, 고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20길 58(신당동 400-3)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시작일(발생일) 1950년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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