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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105 / 이무영 가옥
* 명칭 이무영 가옥 이명칭
개요 이무영(李無影, 1908~1960) 가옥(家屋)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농민문학 작가인 이무영이 거주했던 건축물이다.
설명 이무영(李無影, 1908~1960) 가옥(家屋)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농민문학 작가인 이무영이 그의 말년에 거주했던 건축물로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10길 8-6에 위치한다. 건물 자체는 195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고, 철근콘크리트조에 우진각(건물의 4면에 모두 지붕면이 있는 집) 형태의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현재는 건립 당시의 모습을 거의 발견하기 어려운데, 출입구 부분을 통해 건축 당시의 형태를 다소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무영은 한국 문단에서 농촌 현실의 궁핍과 구조적 모순을 표현해온 문인으로 평가받는다. 1908년 1월 14일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갑용(甲龍)이고 아명은 용구(龍九)이다.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를 중퇴한 후 1925년 일본으로 유학, 세이조중학[成城中學]에서 가토 다케오[加藤武雄]에게 4년 동안 작가 수업을 받았다. 1929년에 귀국한 이후에는 소학교 교원, 출판사 사원, 잡지사 기자 등으로 일하다가 1932년 동아일보(東亞日報)에 〈지축을 돌리는 사람들〉을 연재하면서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1933년에는 이효석(李孝石)·정지용(鄭芝溶) 등과 함께 ‘구인회(九人會)’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34년에 동아일보사 학예부 기자가 되어 〈B녀의 소묘〉 등의 단편 다수와 〈먼동이 틀 때〉 등의 장편을 연재하기도 했다. 1936년에는 이흡(李洽)과 함께 《조선문학(朝鮮文學)》을 창간하여 주간으로 활약하였다.
1939년에 동아일보를 사직하고 경기도 군포에 정착하여 농경과 문필을 병행하면서, 〈흙의 노예〉, 〈농민〉 등의 작품을 썼는데, 이무영은 이때의 작품을 통해 농민문학 작가로 자신의 위치를 세웠다. 광복 이후에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全國文化團體總聯合會)의 최고위원을 역임하였으며, 1956년에 〈농부전초(農夫傳抄)〉로 제4회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숙명여자대학교와 단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역사정보 1950년대 건축
1950년대 작가 이무영 거주
시대분류 현대/1950년대
주제분류 문화/인물/민가, 고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10길 8-6(신당동 349-90)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시작일(발생일) 1950년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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