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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98 / 김대건 신부
* 명칭 김대건 신부 이명칭
개요 김대건(金大建, 1821~1846) 신부(神父)는 1821년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1845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이후 본국으로 돌아와 서울과 경기도 지역을 오가며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고 외국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였다. 1846년에 황해도 강해군의 섬 순위도(巡威島)에서 체포되어 같은 해 새남터에서 참수되었다.
설명 김대건(金大建, 1821~1846) 신부(神父)는 1821년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牛江面)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천주교 신자로서 10년간의 옥고 끝에 순교하였고, 아버지 또한 천주교 신자로 순교하였다. 그는 7세 때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內四面)으로 이사하고 그곳에서 성장하였으며, 1836년 프랑스인 신부 모방(P.Maubant)에게 세례를 받고 예비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서울로 상경하였다. 조선시대의 통역 관리였던 유진길(劉進吉)에게 중국어를 배워 마카오로 건너갔고 로마 가톨릭교회의 선교 단체인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소속 칼레리(Calleri) 신부로부터 신학과 서양 학문, 프랑스어·중국어·라틴어 등을 배웠다. 이후 김대건 신부는 1844년 12월 페레올(Ferréol) 주교로부터 부제품(사제 전 단계) 서품(敍品)을 받고 1845년 조선으로 돌아왔다. 서울에 잠입한 김대건 신부는 선교활동을 하다 같은 해 4월 페레올 주교를 입국시키기 위해 상하이[上海]로 향하였다. 상하이에 도착한 그는 진자샹[金家港] 신학교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신부가 되었다. 이후 조선으로 돌아와 순교하기 전까지 서울과 경기도 지역을 오가며 천주교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고 외국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였다. 1846년 5월 김대건 신부는 황해도 강령군의 섬 순위도(巡威島)에서 체포 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같은 해 그는 9월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다음 날 새남터에서 2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당시 조선 정부는 그의 시신을 파묻고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했지만 살아남은 천주교 신자들이 시신을 비밀리에 옮겨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美山里)에 안장하였다. 김대건 신부는 순교 이후 1857년 로마 교황청에 의해 가경자(可敬者)로 선포되었고 1925년 다시 교황청에서 시복(諡福)돼 복자위(福者位)에 올랐다. 1984년 내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Pope John Paul II, Karol Wojtyla) 에 의해 시성(諡聖)되었고 성인위(聖人位)에 올랐다. 1984년 한국 선교 2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그림 ‘김대건 신부의 초상’은 한국 천주교의 공인 성화 제1호로 지정돼 서울의 명동성당에 소장되어 있다.
역사정보 1821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출생 1836 프랑스인 신부 모방에게 세례를 받음 1837 마카오로 유학 1845 조선으로 귀국해 선교 활동을 벌임 1845 중국 상하이 금가항 신학교에서 사제 서품을 받음 1846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사형 1857 로마 교황청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 1925 교황청에서 시복돼 복자위에 오름 198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돼 성인위에 오름
시대분류 조선/1821~1846
주제분류 문화/인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인물 1821년~18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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