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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97 / 에밀 마르텔
* 명칭 에밀 마르텔 이명칭
개요 에밀 마르텔(Emil Martel, 1874~1949)은 1874년 프랑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교육가로서 개화기에 프랑스어를 가르치던 조선의 외국어학교인 법어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는 프랑스어 번역가·강사로 활동하다가 1949년 서대문의 자택에서 별세하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楊花津外國人宣敎師墓園)에 안치되었다.
설명 에밀 마르텔(Emil Martel, 1874~1949)은 프랑스인 세관리(稅關吏) 알퐁소 마르텔(Alphonse Martel)과 일본인 루이스 곤도[Louise 近藤]의 장남으로 1874년 출생하였다. 그는 중국의 상하이[上海]와 톈진[天津]의 프랑스 상사에서 근무하던 아버지를 따라 톈진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이후 모국인 프랑스로 돌아가 쌩 에띠엔느 광산학교(l'Ecole de Mine de St. Etienne)를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에서 광산기사로 근무하다 1894년 조선으로 건너와 1896년 프랑스어 학교인 법어학교(法語學校)를 설립하였다. 초기의 법어학교는 에밀 마르텔의 자택에서 전교생 14명으로 시작됐지만 지속적인 관리로 6학급 100여 명의 학생을 가진 외국어학교로 성장하였다. 1905년 명동성당에서 대한제국 애국가의 작곡자로 유명한 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의 딸 아멜리아(Amelia)와 결혼하였고 1911년 학교가 해산될 때까지 법어학교의 교장이자 교사로서 여러 교육분야에서 활동하였다. 1911년 법어학교가 해산된 이후 에밀 마르텔은 고국인 프랑스로 돌아갔고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프랑스의 군인으로 전쟁에 참가하였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1920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영문판 주간신문인 서울 프레스(The Seoul Press)의 번역가와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의 프랑스어 강사로 활동하며 1934년 《외국인이 본 조선외교비화[外人の 觀たる 朝鮮外交秘話]》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에밀 마르텔이 법어학교를 세우던 때의 이야기를 비롯해 당시 사회에 벌어졌던 다양한 역사, 문화적 사건과 실존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근대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1943년 에밀 마르텔은 일본의 외국인 탄압으로 인해 추방된 후 중국에서 머물다가 1947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지냈다. 1949년 그는 서대문의 자택에서 사망하였고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었다.
역사정보 1874 프랑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1894 조선으로 입국 1896 프랑스어 학교인 법어학교 설립 1905 명동성당에서 독일인 아멜리아와 결혼 1911 법어학교 해산 이후 프랑스로 귀국, 제1차 세계대전 참전 1920 한국으로 돌아와 프랑스어 번역가, 강사로 활동 1934 회고록 《외국인이 본 조선외교비화》 출간 1949 서대문 자택에서 사망
시대분류 조선~현대/1874~1949
주제분류 문화/인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인물 1874년~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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