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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96 / 벙커
* 명칭 벙커 이명칭
개요 벙커(D. A. Bunker, 1853~1932)는 1886년 조선으로 건너와 육영공원(育英公院)의 외국어 교사이자 교육선교사로 활동했다. 배재학당의 3대 교장이었으며, YMCA운동·국권회복운동·애국운동 등에 적극 참여했다. 1932년 사망하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楊花津外國人宣敎師墓園)에 안치되었다.
설명 벙커(D. A. Bunker, 1853~1932)는 1853년 8월 미국에서 출생하여, 1883년 오하이오 주 오벌린대학을 졸업하고,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1882년(고종 19)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이 체결되고 영어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자 민영익(閔泳翊)이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育英公院) 설립을 추진하였다. 이에 1886년(고종 23) 육영공원 운영을 위해 미국에 3명의 교사를 요청하였는데, 당시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수학 중이던 벙커는 길모어(G. W. Gilmore)·헐버트(H. B. Hulbert) 등과 함께 조선으로 오게 되었다. 벙커는 육영공원에 근무하며 영어를 가르쳤다. 이후 정부의 재정지원 문제로 길모어와 헐버트가 교사직을 사임하고 1894년(고종 31) 육영공원이 문을 닫게 되자 아펜젤러가 세운 중구 정동의 배재학당(培材學堂)으로 자리를 옮겼다. 벙커는 그곳에서 토론 위주의 공개적인 수업방식을 도입하고, 물리학·화학·수학·정치학 등 새로운 교과목을 채택하였다. 1906년(고종 43)에는 배재학당의 3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1898년(고종 35) 독립협회(獨立協會)에 대한 무고(誣告)로 독립협회가 해산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때 수십 명의 애국지사들이 한성감옥에 수감되었는데, 벙커는 선교사들과 힘을 모아 수감자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였다. 또 선교활동을 허가받아 수감자들을 위로하고 기독교서적을 나눠주었으며 옥중에서 이승만(李承晩)·이상재(李商在)·남궁억(南宮檍) 등 12명에게 세례를 주기도 하였다. 이후 벙커는 YMCA운동·국권회복운동·애국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05년(고종 9)에는 한국복음주의선교단체 연합공의회를 조직하여 교파를 초월한 교회 연합을 지향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1926년 노령으로 선교사직을 은퇴하고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1932년 사망하였으며, 유언에 따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치되었다.
역사정보 1853 미국 출생 1886 육영공원 교사로 조선으로 입국 1905 한국복음주의선교단체 연합공의회 조직 1932 사망
시대분류 조선~일제강점기/1853~1932
주제분류 문화/인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인물 1853년~19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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