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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104 / 김희갑 가옥
* 명칭 김희갑 가옥 이명칭
개요 김희갑(金喜甲, 1923~1993) 가옥(家屋)은 대한민국의 영화배우이자 희극인인 김희갑이 1960년경에 거주했던 건축물이다.
설명 김희갑(金喜甲, 1923~1993) 가옥(家屋)은 대한민국의 영화배우이자 희극인인 김희갑이 1960년경에 거주했던 건축물로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358에 위치한다. 건물 자체는 1950년대에 지어진 철근콘크리트구조 및 조적조구조이지만, 현재는 건물의 전면부를 유리로 리모델링하여 외관이 바뀌었다. 이 건물에는 스포츠용품점과 음식점 등이 입점해 영업하고 있다. 건립 당시의 조적조구조가 건물 후면과 내부에 일부 남아 있다. 김희갑은 1923년 함경남도 장진에서 태어났다. 1934년에 회령보통학교(會寧普通學校)를 졸업하였으며, 1940년 일본의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상과에 입학하였지만 곧바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1943년 조선전업주식회사(朝鮮電業株式會社)에 입사하였다가 퇴사하였고, 1945년 월남하여 대동신문사(大東新聞社)에서 기자로 일하기도 하였다. 그가 영화인으로 처음 발을 디딘 계기는 대동신문사를 퇴사한 직후인 1946년 3월의 반도가극단(半島歌劇團) 입단인 것으로 보인다. 입단했을 때에는 프롬프터로 출발하였으나 1946년 11월 〈장화홍련전〉의 사또역을 맡기로 한 배우가 갑자기 잠적하여 임시로 대역을 맡은 것이 배우로서의 출발이었다. 이후 〈칠공주〉에서 정식으로 배우로 데뷔하였고, 〈옥루몽〉과 〈에밀레종〉 등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동료 영화배우였던 구봉서(具鳳書)와 함께 합죽이·막둥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면서 서민들의 사랑을 받는 배우로 성장하였다. 1967년에는 국책영화 〈팔도강산〉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도 했다. 19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에서 〈새댁〉으로 성격배우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제3회 대종상에서 〈쌀〉로 남우조연상을, 다시 1972년 제11회 대종상에서 〈작은 꿈이 꿈꿀 때〉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1992년에는 자전회고록 《어느 광대의 사랑》을 출간하였고, 이듬해 사망하였다.
역사정보 1950년대 건축 1960년대 희극인 김희갑 거주
시대분류 현대/1950년대
주제분류 문화/인물/민가, 고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358(신당동 233-19)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시작일(발생일) 1950년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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