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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92 / 엘리스 리베카 아펜젤러
* 명칭 엘리스 리베카 아펜젤러 이명칭
개요 엘리스 리베카 아펜젤러(Alice Rebecca Appenzeller, 1885~1950)는 한국 감리교 최초의 선교사인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와 엘라 다지(Ella Dodge) 부부의 장녀(長女)로서 한국에서 출생하였다. 그녀는 1915년 감리교 선교사로서 이화학당(梨花學堂, 현 이화여자고등학교·이화여자대학교)의 교사로 부임하여 이화학당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50년 사망 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楊花津外國人宣敎師墓園)에 안치되었다.
설명 엘리스 리베카 아펜젤러(Alice Rebecca Appenzeller, 1885~1950)는 한국 감리교 최초의 선교사인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와 엘라 다지(Ella Dodge) 부부의 장녀(長女)이다.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가 결혼한 지 2달 만에 선교를 신청하여, 엘리스 리베카 아펜젤러(Alice Rebecca Appenzeller)는 어머니의 복중(腹中)에서 태평양을 횡단하였다. 1885년 한국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았으며 유치원 과정을 마친 후 어린나이로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을 받았다. 엘리스 리베카 아펜젤러는 1915년 감리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한국어와 일본어를 공부하고 이후 중구 정동의 이화학당 교사로 부임하여 영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1921년 10월에는 학장에 취임했으며, 이화학당 대학과를 이화여자전문학교로 승격시켜 초대교장에 취임했다. 전문학교의 새 교사(校舍)를 만들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45만 달러를 모금했고, 5만평 부지의 새 교사인 신촌의 이화동산 완공에 많은 기여를 했다. 1932년에는 기독교 조선감리교회 목사가 되었다. 엘리스 리베카 아펜젤러는 교장과 목사를 겸하며 사회에 봉사하고 인재의 양성에 필생의 노력을 다하였다. 이후 1939년 신임하던 제자 김활란에게 교장자리를 넘겨주었다. 1950년 65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평소에 한국 땅에 묻히기를 소원하였고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楊花津外國人宣敎師墓園)에 안치되었다. 아펜젤러의 묘비명은 “Not to Be ministered Unto But to Minister(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로 그녀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역사정보 1885 한국 출생 1915 감리교 선교사로 내한, 이화학당 교사 1921 이화학당 학장 취임 1932 기독교 조선감리교회 목사로 부임 1950 사망
시대분류 조선~현대/1885~1950
주제분류 문화/인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인물 1885년~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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