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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91 / 아펜젤러 2세
* 명칭 아펜젤러 2세 이명칭
개요 아펜젤러 2세(Henry Dodge Appenzeller, 1889~1953)는 1889년 조선에서 출생한 미국 감리교 목사로서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의 장남(長男)이다. 1920년 선친(先親)이 창립한 배재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해 인재양성과 기독교 복음전파에 힘썼으며, 1950년 6·25전쟁 후 기독교세계구제회 한국 책임자로 일하였다. 1953년 과로로 건강이 악화되어 본국으로 귀환했으나 그 해 사망하였고, 유언에 따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楊花津外國人宣敎師墓園)에 안장되었다.
설명 아펜젤러 2세(Henry Dodge Appenzeller, 1889~1953)는 조선시대의 감리교 선교사인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의 장남으로서 1889년 서울특별시 정동에서 출생했다. 1890년 본국으로 귀국하여 프린스턴 대학교(Princeton University)·드류 신학교(Drew Theological Seminary)·프랭클린 앤 마셜 칼리지(Franklin and Marshall College)를 졸업하였다. 1917년 한국의 감리교 선교사로 임명받아 한국으로 돌아왔고 인천지방의 선교 사업에 종사하다가 1920년 아버지인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培材學堂, 현 배재중학교·배재고등학교·배재대학교)의 제4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1920년 배재학당의 학생들이 동맹 휴학을 하며 독립만세 운동을 펼치자 일제는 아펜젤러 2세에게 학생들을 처벌하라고 압박했지만 그는 학생들을 보호하였다.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당하여 본국으로 돌아가 하와이 호놀룰루 제일 감리교회 목사로 봉직하였다. 이후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기독교세계구제회 한국 책임자로 일하였다. 1952년 배재중·고등학교 재단이사장에 취임하여 활동하던 중 1953년 과로로 건강이 악화되어 본국에 귀환하였다. 그 해 65세의 나이로 별세한 아펜젤러 2세의 유언은 “나의 뼈를 나의 고국이요 사랑인 한국 땅에 묻어 달라”는 것이었다. 유언에 따라 그의 유골은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1954년 정동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른 후 마포구 합정동의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楊花津外國人宣敎師墓園)에 안장되었다.
역사정보 1889 조선에서 출생 1911 프린스턴대학교 졸업 1915 드류신학교 졸업 1917 한국 선교사로 임명받아 입국 1920 배재학교 제4대 교장으로 취임 1941 본국으로 돌아가 호놀룰루 제일감리교회 목사로 봉직 1950 6·25전쟁 때 한국으로 귀환 1952 배재중·고등학교 재단이사장으로 취임 1953 건강 악화로 본국으로 귀환해 사망 1954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
시대분류 조선~현대/1889~1953
주제분류 문화/인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인물 1889년~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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