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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90 / 아펜젤러
* 명칭 아펜젤러 이명칭
개요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1858~1902)는 185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Commonwealth of Pennsylvania) 손더튼(Saunderton)에서 출생한 감리교 목사로, 1885년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선교회를 창설했으며 배재학당(培材學堂)을 설립했다. 이후 한국 최초의 서구식 예배당인 정동제일교회를 세웠는데, 정동제일교회는 개화운동과 민족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1902년 선박충돌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한국인의 생명을 구하려다 익사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楊花津外國人宣敎師墓園)에 그의 가묘(假墓)가 있다.
설명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1858~1902)는 조선 고종 시대에 기독교를 전파한 선교사이다. 185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Commonwealth of Pennsylvania) 손더튼(Saunderton)에서 태어났으며 1879년 감리교회에 들어간 후 드류 신학교(Drew Theological Seminary), 프랭클린 앤 마셜 칼리지(Franklin and Marshall College)를 졸업하였다. 이후 1885년 미국 감리교 선교 위원회에서 조선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1885년 아내와 함께 인천으로 입국하였다. 아펜젤러는 신학문에 뜻을 가진 조선의 청년을 모아 교육 사업을 시작했고, 고종 황제가 이름과 현판을 하사한 조선 최초의 서양식 학교인 배재학당(培材學堂, 현 배재중학교·배재고등학교·배재대학교)를 설립하였다. 이후 배재학당에서 신학문 교육, 영어교육과 의료 선교를 시작했으며, 1885년 10월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성찬식을 거행하고 정동제일교회를 창립했다. 1887년 조선 성경번역부가 생기자 성경 국역 사업에 참여해 《마태오의 복음서》《마르코의 복음서》《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번역을 마쳤고, 1895년 월간잡지 《한국휘보(The Korean Repository)》를 편집했다. 1902년 목포(木浦)에서 열리는 성경번역자회의에 참석차 인천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군산 앞바다에서 충돌사고를 당했는데, 아펜젤러는 함께 있던 조선인 여학생을 구하려다 익사하였다. 이후 그의 시신은 찾지 못하였으며 현재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楊花津外國人宣敎師墓園)에 그의 가묘(假墓)가 세워져 있다.
역사정보 1858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출생 1879 미국 감리교에 입교 1885 인천으로 입국, 배재학당·정동 제일교회 설립 1887 성경 국역사업 참여 1895 월간잡지 《한국휘보》 복간 1902 사망
시대분류 조선~대한제국/1858~1902
주제분류 문화/인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인물 1858년~19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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