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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89 / W.B.스크랜턴
* 명칭 W.B.스크랜턴 이명칭
개요 윌리엄 B. 스크랜턴(William B. Scranton, 1856~1922)은 미국 감리교회 소속의 의료 선교사이다.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Mary Flecher Benton Scranton)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병원인 정동병원과 상동병원을 개원, 근대적 의료시설에 의한 치료로 질병퇴치 및 공익적 의료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다.
설명 윌리엄 B. 스크랜턴(William B. Scranton, 1856~1922)은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Mary Flecher Benton Scranton)과 함께 1885년 우리나라에 들어와 근대적 의료와 민중선교에 힘썼던 미국 감리교회 소속의 선교사이다. 그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시란돈(施蘭敦)이라는 한국이름도 갖고 있었다. 그가 한국에 와서 개원한 최초의 민간병원인 정동병원이 1886년 시설을 확장했을 때 고종은 그의 이름을 따서 시병원(施病院, Universal Relief Hospital)이라 지어주기도 했다. 스크랜턴은 한국에 온 첫해인 1885년 거처로 정한 정동 집의 사랑채(현 정동제일교회 주변)에 정동병원을 개원했다. 그 이전 몇 달 동안은 최초의 병원인 제중원(광혜원)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정동병원은 제중원에 이은 두 번째 병원이자 최초의 민간병원이다. 1887년에는 동대문 근처에 한국 최초의 여성전문병원인 보구여관(保救女館)을 설치했다. 이후 넘쳐나는 환자로 시설이 부족해진 스크랜턴은 정동병원을 1894년 남대문 안 상동에 있던 감리교회 소속의 상동병원으로 옮긴다. 그리하여 확장·통합되어 개원한 상동병원은 이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민간의료에 주력하고 전염병에 대처하는 등 근대의료의 혜택이 공익적 성격을 띠고 한국 사회에 골고루 퍼지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스크랜턴이 주로 돌본 환자는 전염병에 걸려 버려진 빈민이나 고아였다. 또한 그의 선교병원은 부녀자와 아동치료를 전문으로 하게 되었는데, 이때 배출한 여의사들의 도움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부속병원과 의과대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스크랜턴은 상동병원을 세우고 그곳을 기반으로 상동교회를 설립하여 민중 선교에도 힘썼으며 자택도 병원 근처로 옮겼다. 이후 상동교회는 ‘한국민족운동’의 요람이 되어 수많은 민족운동가 및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스크랜턴은 선교사 직을 사임한 뒤에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의사로서 한국에서 해왔던 의료 활동을 지속해나갔다. 1922년 일본 고베에서 66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의 한국사랑, 특히 민간의료와 민중선교의 열정은 끊임이 없었다.
역사정보 1856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출생 1878 예일대학교 졸업 1882 뉴욕의과대학 졸업 1884 미국 감리교회에서 한국 선교사로 임명 1885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 여사와 함께 한국에 입국, 최초의 민간병원인 정동병원 설립 1888 상동교회 설립 1894 정동병원을 이전, 상동병원과 통합 개원 1907 감리교회 선교사 직에서 사임 1922 일본 고베에서 사망
시대분류 조선~일제강점기/1856~1922
주제분류 문화/인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인물 1856년~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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