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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101 / 광희문
* 명칭 광희문 이명칭 수구문, 남소문, 시구문
개요 광희문(光熙門)은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8개문 가운데 하나로 1396년(태조 5)의 도성 수축 공사 때 세운 동남쪽의 문을 일컫는다. 광명의 문이라는 뜻에서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광희문(光熙門)이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알려진다. 일제강점기에 문루가 파손되었던 것을 1975년 성곽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석문을 수리하고 문루를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설명 광희문(光熙門)은 1396년(태조 5) 한양도성이 완성될 때 창건되었으며,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광희문이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광희문은 다양한 이칭(異稱)이 존재해 수구문(水口門), 남소문(南小門), 시구문(屍口門) 등으로도 불리었다. 수구문은 풍수지리에서 수(水)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문이라는 의미에서, 남소문은 남대문과 동대문 사이에 위치한 문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리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시체가 빠져나간다는 의미에서 시구문으로 더 많이 통했는데, 조선시대에는 소의문(昭義門, 남대문과 돈의문 사이의 남서쪽 문)과 광희문을 통해서만 상여가 성 밖으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희문은 조선시대에 몇 차례에 걸쳐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1422년(세종 4)에 한 차례 광희문의 개축이 있었으며, 1711년(숙종 37)에도 금위영(禁衛營)에 명하여 이 문을 개축하였다는 기록이 《숙종실록(肅宗實錄)》에 남아 전한다. 이후 문루가 제대로 세워지고 광희문이라는 현판이 걸린 것이 1719년(숙종 45)이었다. 광희문의 파손이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이른바 문화주택지 조성이라는 도시개발계획이 수립되면서부터이다. 1913년 전차지선(電車支線)이 놓이게 되면서 북쪽 성곽이 헐렸고, 1915년에는 문루가 무너졌다. 광복 후 6·25전쟁으로 파괴된 문루가 그대로 방치되던 중 1966년에 퇴계로 확장공사가 진행되면서 퇴계로7가 쪽의 성곽마저 추가로 철거되었다. 광희문 복원은 1975년 서울의 성곽에 대한 전체 복원사업이 수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광희문의 홍예문(虹霓門)을 15m 남쪽으로 옮겨 쌓았으며, 멸실(滅失)된 문루를 원래대로 복원함과 동시에 주변 일대를 녹지화하는 조경사업이 실시되었다. 2003년에는 광희문에서 남쪽으로 120m 정도에 이르는 성곽에 대한 복원이 이루어졌다.
역사정보 1396 한양도성이 완성될 때 만들어짐 1422 1차 개축이 이루어짐 1711 금위영에 명하여 2차 개축이 이루어짐 1719 문루의 완성과 현판이 걸림 1913 전차지선이 놓이게 되면서 북쪽 성곽이 헐림 1920년대 문화주택지 개발로 일부 훼손 1966 퇴계로 확장으로 퇴계로7가 쪽 성벽이 헐림 1975 서울 성곽 전체 복원 사업의 추진으로 홍예문을 15m 남쪽으로 옮기고, 문루 복원 후, 주변 녹지화 2003 광희문 남쪽 120m의 성곽 복원
시대분류 조선/1396
주제분류 문화/축조물/문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광희동2가 105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광희동2가
시작일(발생일) 13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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