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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61 / 이경하
* 명칭 이경하 이명칭
개요 조선 고종 때의 무신 이경하(李景夏, 1811~1891)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회(汝會)이다. 광평대군의 후손으로 신정왕후의 인척이다. 금위대장과 형조판서 등 무관의 주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대원군의 신임을 받아 포도대장으로 있을 때 많은 천주교인을 처형하였다.
설명 이경하(李景夏, 1811~1891)는 1863년(철종 14), 고종이 즉위하고 흥성대원군이 집권하자 훈련대장 겸 좌포도대장을 지낸 후 금위대장과 형조판서를 역임했다. 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할 때 포도대장으로서 많은 천주교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당시 그가 살았던 낙동(駱洞, 현 중구 명동2가) 자택에서 죄인들을 심문하였다 하여 사람들이 이경하를 ‘낙동염라(駱洞閻羅)’라고 불렀다는 말이 전한다. 1866년(고종 3) 천주교 신부의 신변보호를 빌미로 프랑스가 일으킨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순무사로 발탁되어 도성 수비를 맡았다. 1882년(고종 19)에 무위대장으로 재직 중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진압에 실패한 책임으로 문책당하여 전라도 고금도에 유배되었다. 1884년(고종 21) 흥선대원군의 신임으로 풀려나 다시 좌포도대장이 되었다. 그해 12월 갑신정변이 일어나 조대비(趙大妃)·민비(閔妃)와 함께 나중에 순종 임금이 되는 세자를 자신의 아들 범진(範晋)의 집에 피신시키기도 하였다. 1891년(고종 28), 나이 81세로 사망하기까지 주로 군사·경찰의 요직을 맡아 치안을 담당하였다. 시호는 양숙(襄肅)이다.
역사정보 1811 출생, 한성부 낙동(현 중구 명동2가)에서 거주 1863 좌포도대장 임명 1891 사망
시대분류 조선/1811~1891
주제분류 문화/인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인물 1811년~18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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