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역사문화자원Database Contents

역사문화자원

  • home >
  • 역사문화자원
  • 수정

 

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55 / 심상규
* 명칭 심상규 이명칭
개요 조선 후기의 문신 심상규(沈象奎, 1766~1838)의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치교(穉敎)·가권(可權), 호는 두실(斗室)·이하(彛下)이다. 정조 때 왕의 총애를 받아 초계문신(抄啓文臣)에 선임되고, 치교라는 자와 상규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문장에 능하고 해박한 지식을 가져 여러 번 편찬사업을 주도하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군주가 정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적어놓은 《만기요람(萬機要覽)》은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설명 심상규(沈象奎, 1766~1838)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한성부 송현(松峴, 현재 중구 북창동)에서 살았다. 1781년(정조 5), 15세에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서 학업을 연마하고 1789년(정조 13)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규장각 대교(待敎)·직각(直閣)을 역임하고, 이듬해 《홍재전서(弘齋全書)》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791년(정조 15) 정쟁에 연루되어 강원도 고성으로 유배되었으나, 곧 방면되어 규장각에서 《오륜행실(五倫行實)》 등의 편찬사업에 힘썼다. 그 후 1798년(정조 22), 승지를 잠시 역임하였으며 각신(閣臣)으로 오래 재직하면서 정조를 보필하여 문물을 정리하였다. 정조 때 규장각의 초계문신(抄啓文臣)에 선임되었고, 왕의 총애를 받아 상규라는 이름과 치교(穉敎)라는 자를 하사받았다. 정조의 사후 《천릉비문(遷陵碑文)》을 지었다. 1800년(정조 24), 순조가 즉위하여 이조참의에 기용되었으나,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가 수렴청정하면서 벽파(辟派)가 득세하자, 시파(時派)였던 그는 탄핵을 받아 함경도 홍원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다시 기용되어 대사간(大司諫)·이조참판(吏曹參判)을 역임하였고 1804년(순조 4), 실록청 편수당상관이 되어 《정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809년(순조 9), 도승지가 되어 정경(正卿)에 올랐다. 1811년(순조 11) 병조판서(兵曹判書)로 있을 때 홍경래 등이 주동이 된 평안도 농민항쟁이 발생하자 이를 진압하였다. 1825년(순조 25) 우의정에 올라 세자가 대리청정하게 되자 그를 보좌하여 《서정절목(庶政節目)》을 찬진하였다. 이때 풍덕부(豊德府)의 혁파를 주장하다가 대사간 임존상(任存常)의 탄핵을 받아 강원도 이천에 유배되었으나, 곧 방면되어 경기도 장단의 고향으로 낙향하였다. 1832년(순조 32), 다시 기용되어 좌의정이 되었고, 1834년(순조 34) 영의정이 되었으나 순조가 승하하자 원로대신으로서 왕세손의 스승과 호위대장을 겸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필법이 뛰어났으며 당시의 제1인자로 손꼽힐 정도로 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저술로 《두실존고(斗室存稿)》《두실척독(斗室尺牘)》이 있으며, 특히 그가 편찬한 《만기요람(萬機要覽)》은 군주가 정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료와 세금·경제·전술에 대한 부분을 기록해놓아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역사정보 1766 한성부 송현(현 중구 북창동) 출생 1789 알성문과 병과 급제 1838 사망
시대분류 조선/1766~1838
주제분류 문화/인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인물 1766년~1838년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