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역사문화자원Database Contents

역사문화자원

  • home >
  • 역사문화자원
  • 수정

 

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50 / 박지원
* 명칭 박지원 이명칭
개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뛰어난 문장가·실학자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하고, 자유롭고 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소설을 남긴 인물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자는 미중(美仲), 호는 연암(燕巖)이다. 지금의 중구 순화동 근처에서 노론계의 명문 양반가에서 태어났으며, 청나라를 다녀오면서 실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문장은 날카로운 풍자와 유머, 그리고 신선한 내용의 전개로 조선 후기 글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설명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로, 《열하일기(熱河日記)》《연암집(燕巖集)》《허생전(許生傳)》 등을 남긴 뛰어난 문장가이다. 한성부(漢城府) 반송방(盤松坊) 야동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호는 연암(燕巖)이다. 박지원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부터 매우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으며 노력 또한 대단하였다. 그러나 과거 시험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1768년(영조 44) 지금의 인사동 근처에 있는 백탑 근방으로 이사하고, 박제가(朴齊家)·이서구(李書九)·유득공(柳得恭) 등과 교유(交遊)하였다. 1780년(정조 4)에는 사행단(使行團)을 수행하여 북경과 열하 일대를 여행한 뒤 그 견문을 정리한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저술하였다. 박지원의 사상적 편폭은 매우 넓고 다양했다. 문물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던 청나라를 배우자는 취지의‘북학(北學)’을 주창하였고,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또 이른바 서학(西學)으로 알려진 천주교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박지원은 이러한 사상을 두루 받아들여, 성리학으로 경직된 조선의 고루한 사상을 혁파하고 현실 문제의 개혁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그가 남긴 소설들은 매우 참신하고 문학적 성취가 뛰어난 작품들로 평가받는다. 그중, 벗들과 함께 새벽녘 청계천 일대 및 종각 근처를 거닐었던 일을 소재로 쓴 《취답운종교기(醉踏雲從橋記)》는 특히 유명하다. 이 작품 속에서 박지원은 맑고 고즈넉한 서울 도심의 풍경이 아름답게 묘사하며, 자신과 친구들의 자부심, 그리고 세상에 느끼는 소외감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저서로 《열하일기》《연암집(燕巖集)》 등이 있다. 1910년(순종 4)에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문도공(文度公)의 시호를 받았다.
역사정보 1737 중구 순화동 근처에서 출생 1780 북경 여행 1805 사망 1910 시호 문도공 추증
시대분류 조선/1737~1805
주제분류 문화/인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인물 1737년~1805년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