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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49 / 박은
* 명칭 박은 이명칭
개요 박은(朴誾, 1479~1504)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으로, 지금의 중구 회현동에 해당하는 한성부 남부 장흥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고령(高嶺)이며, 자는 중열(仲說), 호는 읍취헌(挹翠軒)이다. 영특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연산군의 미움을 사서 젊은 나이에 참수형을 당하였다. 이행(李荇)과 함께‘해동강서시파(海東江西詩派)’의 대표적 시인으로 꼽힌다.
설명 박은(朴誾, 1479~1504)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으로 한성부(漢城府) 남부 장흥동에서 출생하였다. 박은은 어려서부터 수려한 외모에 영특하기까지 하여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이행(李荇)에 의하면, 박은은 4세에 글을 읽고 8세에는 글의 속뜻까지도 파악하였으며 15세에는 이미 문장을 자유자재로 지었다고 한다.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으로 있던 신용개(申用漑)가 박은의 뛰어난 재능을 보고 사위로 삼았다. 1495년(연산군 1)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8세가 되던 1496년(연산군 2)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대과에 합격하던 해에 사가독서자(賜暇讀書者)로 뽑히기도 하였다. 이후 홍문관(弘文館)에 재직하면서 강직한 언로를 펼쳐 연산군(燕山君)과 신하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연산군은 박은의 간쟁에 설득되기도 하였으나, 1501년(연산군 7) 유자광을 탄핵하다가 결국 파직을 당하였다. 이후 그는 술을 마시고 시를 짓는 일로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세월을 보내었으며, 이때 쓴 시는 높은 예술성으로 유명하였다. 박은이 시로 소일하는 동안, 가정을 책임지고 있던 아내 신씨(申氏)마저 2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박은은 매우 절망하였다. 다음 해인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동래로 유배되었으며, 이후 의금부(義禁府)에 압송된 뒤 사형당하였다. 박은은 절친한 친구인 이행(李荇)과 함께 정교한 송시(宋詩)풍의 시를 지향한 ‘해동강서시파(海東江西詩派)’의 대표적 인물이다. 박은이 죽은 뒤, 이행이 그의 시를 모아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를 편찬하였다.
역사정보 1479 출생 1496 식년문과에 병과 급제 1504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사형
시대분류 조선/1479~1504
주제분류 문화/인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인물 1479년~15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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