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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47 / 남재
* 명칭 남재 이명칭
개요 남재(南在, 11351~1419)는 조선의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을 도왔으며 조선이 건국된 후 대사헌과 우의정·좌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본관이 의령(宜寧)으로 초명은 겸(謙), 자는 경지(敬之), 호는 구정(龜亭)이다.
설명 남재(南在, 11351~1419)는 조선의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을 도와 조선이 건국된 후 대사헌과 우의정, 좌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본관이 의령(宜寧)이며, 초명은 겸(謙), 자는 경지(敬之), 호는 구정(龜亭)이다. 남재는 이색(李穡)을 스승으로 모시고 같이 수학하였던 정몽주·정도전 등과 친밀하게 지냈다. 1371년(공민왕 20)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관직을 제수 받았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으로 정권을 잡자 아우인 남은(南誾)과 함께 이성계의 편에 서서 정국을 도모하였다. 조선의 건국을 목전에 두고 공로를 인정받고 포상을 받게 되자 지방으로 몸을 피하였다. 이에 이성계가 백방으로 찾아내어 ‘재(在)’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다시 만난 기쁨을 치하하였다. 조선의 개국 후 개국공신 1등에 녹훈(錄勳)되었고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를 지냈다. 정도전의 급진적 개혁에 거부감을 느끼고 거리를 둔 덕분에 왕자의 난에 화를 입지 않았다. 1403년(태종 3)에 경상도도관찰사, 1404년(태종 4)에 찬성사(贊成事)와, 1408년(태종 8)에 대사헌(大司憲)을 차례로 역임한 뒤 1414년(태종 14) 우의정(右議政)과 좌의정을 거쳐 1416년(태종 16) 영의정에 임명되었다가 사임하였다. 1419년(태종 19)에 사망하자 나라에서 장지(葬地)를 직접 정하여 주고 세종이 찾아와 조문하였다. 남재는 성품이 활달하고 도량이 넓어 형식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마음가짐은 조심스러워 예의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문장이 아름답고 심오하였다고 평가받았으며 산술(算術)에 정통하여 남산(南算)이라 일컬어졌다. 남재의 자택이 지금의 장충동 일대인 한성부 명철방(明哲坊)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택지에 취미당(翠微堂)을 지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역사정보 1351 출생 1371 진사시 급제 1392 개국공신 1등 녹훈 1419 사망
시대분류 조선/1351~1419
주제분류 문화/인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인물 1351년~14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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