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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45 / 김집
* 명칭 김집 이명칭
개요 김집(金集, 1574~1656)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집은 관직보다는 학문에 힘을 쏟아 아버지인 김장생(金長生)과 함께 조선시대 예학(禮學)의 체계를 잡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기호학파(畿湖學派)를 이룩하였다.
설명 김집(金集, 1574~1656)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김집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아들로 한양 정릉동(貞陵洞)에서 출생하였으며, 관리로 입신하기보다는 학문에 힘을 쏟아 조선시대 예학(禮學)의 체계를 완비하여 기호학파(畿湖學派)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 1574년(선조 7)에 태어난 김집은 1581년(선조 14)에 송익필(宋翼弼)의 문하에서, 1585년(선조 18)에는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1년(선조 24) 진사시에 합격한 뒤 1610년(광해군 2) 헌릉참봉(獻陵參奉)에 제수 되었으나 정치적인 이념 차이로 사직하여 귀향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부여현감(扶餘縣監)이 되었으며 이후 임피현령(臨陂縣令)·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등을 거쳤다. 1645년(인조 23)에 공서파(功西派)가 집권하자 퇴임하였다가 1649년(인조 27) 예조참판(禮曹參判)과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다. 1650년(효종 1) 김육(金堉)의 대동법에 반대하여 갈등하였다. 이후 예학 연구에 집중하였고 1656년(효종 7에)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같은 해 문경(文敬)의 시호가 내려졌고, 1883년(고종 20)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신독재문집 愼獨齋文集》《의례문해속(疑禮問解續)》 등이 있다. 중구 덕수궁길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김장생, 김집선생 생가터’표지석이 있다.
역사정보 1574 중구 정동 부근 출생 1591 진사시 합격 1610 연산으로 낙향 1656 지병으로 사망 1883 영의정 추증
시대분류 조선/1574~1656
주제분류 문화/인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인물 1574년~16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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