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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99 / 쌍회정 터
* 명칭 쌍회정 터 이명칭 이항복 집터
개요 쌍회정(雙檜亭) 터는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사저가 있던 곳으로, 쌍회정(雙檜亭)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쌍회정은 이항복의 집 앞에 지어진 정자로, 이항복이 심은 두 그루의 회나무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이항복이 죽고 집의 새 주인이 회나무 옆에 정자를 지어 쌍회정이라고 했다. 이후 홍엽정(紅葉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조선 말기에 이항복의 후손인 이유원(李裕元)이 이를 사들이면서 이름을 쌍회정으로 다시 고쳤다.
설명 쌍회정(雙檜亭) 터는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집이 있던 곳으로, 쌍회정(雙檜亭)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쌍회정은 이항복의 집 앞에 지어진 정자로, 이항복이 심은 두 그루의 회나무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쌍회정이 있던 구 회현동 일대는 남산자락에 위치하여 경치가 수려하였으므로 조선시대 때 많은 양반들의 사저가 있던 곳이다. 오성과 한음으로 알려져 있는 이항복과 이덕형(李德馨)이 거주하였고, 조선 명종(明宗) 때 영의정을 지낸 상진(尙震)의 집도 있었으며, 권문세가인 동래(東萊) 정씨의 집거지이기도 하였다. 이항복의 후손인 이유원(李裕元)은 문집 《임하필기(林下筆記)》에서 쌍회정의 유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항복 집터에는 몇 대를 거쳐 후손이 거주하다가 주인이 바뀌게 되었는데, 새 주인은 이항복이 심은 회나무 아래에 별채를 짓고 이를 쌍회정이라 하였다. 그 후 새로 주인이 된 서염순(徐念淳)이 정자를 늘려 짓고, 주위에 단풍나무를 심어 정자 이름을 홍엽정(紅葉亭)이라 하였다. 나중에 이유원이 이를 다시 사들였는데, 이때 회나무 한 그루가 이미 죽고 없었으므로 새로 한 그루를 심었다 한다. 이와 함께 이유원이 정자의 이름을 쌍회정으로 다시 고쳤다 한다. 이유원 사후 이곳은 일본인의 소유가 되었는데, 언제 정자가 없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쌍회정 터는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6길 36에 해당한다.
역사정보 1600년대 이항복 사후 그의 집터 부근에 정자를 지음 1800년대 이항복의 후손인 이유원이 정자 이름을 쌍회정이라 함
시대분류 조선/1600년대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6길 36(남창동 202)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남창동
시작일(발생일) 1600년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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