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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40 / 김상헌
* 명칭 김상헌 이명칭
개요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숙도(熟度), 호는 청음(淸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서울시 중구 회현동에서 출생하였으며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의 동생이다. 여러 관직을 역임하며 서인(西人)의 영수로서 인정받았으며, 대표적인 척화신(斥和臣)으로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볼모로 압송되어 4년간의 인질 생활을 하고 돌아왔다.
설명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한양에서 출생하였으며, 3세 때 큰아버지인 김대효(金大孝)에게 출계(出系, 양자로 들어가 대를 이음)하였다. 윤근수(尹根壽)를 스승으로 모셨으며, 소학(小學)을 힘써 공부하였다. 1590년(선조 23) 정시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부수찬, 예조좌랑, 홍문관수찬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광해군(光海君) 때 인목대비의 폐모를 반대하며 낙향하였다가 인조반정 이후 다시 관직에 진출하였다. 강직한 성품으로 어떤 일이든 거침없이 비판하여 여러 고관들과 갈등을 빚어 출사와 사퇴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김상헌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호종(護從, 보호하여 따라가는 일)하였으며, 청나라에 불복하고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하였다. 김상헌은 청나라의 압력에 인조가 결국 항복하자 식음을 전폐하고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계속적으로 청나라가 추진하는 일에 비판과 반대의 입장을 고수하다 청나라의 요구로 압송되어 4년간 인질 생활을 하였다. 인질 시기에 청나라의 회유와 압박에도 곧은 절개로 타협을 거부하고 뜻을 굽히지 않아 청나라 사람들까지도 김상헌의 곧은 절개에 감탄하였다 한다. 1645년(인조 23) 소현세자와 함께 귀국한 뒤 벼슬을 단념하고 석실(石室)로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효종(孝宗)이 즉위하고, 청나라에 당한 치욕을 갚아야한다는 북벌론이 대두되자 대학자 김상헌은 북벌의 상징적 인물로 존경받았다. 효종은 김상헌을 매우 아껴 여러 번 관직을 내렸으며 김상헌은 여러 번 사양하였으나 효종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1652년(효종 3년) 영돈령부사로 재직 중 사망하였고 다음해 의정부 영의정이 증직되었다. 김상헌은 형인 김상용(金尙容, 1561~1637)과 마찬가지로 서울의 장동(壯洞, 현재 종로구에서 서촌으로 말하는 지역)이 세거지(世居地)이기에 장동김씨라고도 한다.
역사정보 1570 서울 중구 회현 출생 1590 정시문과 병과 급제 1639 청나라로 압송 1652 영돈령부사로 재직 중 사망
시대분류 조선/1570~1652
주제분류 문화/인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인물 1570년~16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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