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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39 / 김상용
* 명칭 김상용 이명칭
개요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로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경택(景擇), 호는 선원(仙源),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서울시 중구 회현동에서 출생하였으며, 절개와 지조로 이름난 김상헌(金尙憲)의 형이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급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때 세자빈과 왕손 등 왕족을 보호하여 강화에 갔다가 강화성이 함락되자 화약에 불을 붙여 자결하였다.
설명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로, 1590년(선조 23)에 증광문과(贈廣文科, 국가의 경사가 있을 때 치러지던 과거)에 병과(丙科)로 급제한 뒤 임진왜란 때에는 호남과 영남 지방을 왕래하며 국란을 수습하는데 기여한 인물이다. 왜란이 끝난 뒤에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였다. 1617년(광해군 9) 인목대비 폐위에 관한 논의가 불거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1623년(인조 1)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의 부름을 받아 다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630년(인조 8)에는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가고 2년 뒤에는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늙었다는 이유로 사퇴를 청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김상용은 세자빈과 원손 등 왕족을 호종(護從, 보호하여 따라가는 일)하여 강화도에 건너갔다. 그러나 강화도마저 함락 당하자 일설에는 화약에 불을 질러 자폭하여 순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상용은 문장에 매우 뛰어난데다 충직한 명신으로 명성이 높았다. 글씨에도 일가견이 있어 왕희지(王羲之)의 서체를 잘 썼다고 한다. 사후에 대광보국승록대부(大匡補國崇祿大夫)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인천의 충렬사(忠烈祠)·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김상용은 서울의 장동(壯洞, 현재 종로구에서 서촌으로 말하는 지역)이 세거지(世居地)이기에 장동김씨라고도 한다.
역사정보 1561 서울 중구 회현 출생 1590 증광문과 병과 급제 1636 강화도 함락 후 자결
시대분류 조선/1561~1637
주제분류 문화/인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인물 1561년~16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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