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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31 / 국사당의 유래
* 명칭 국사당의 유래 이명칭
개요 국사당(國師堂)은 조선시대에 국가 제의를 행하고,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기원하는 신당으로, 원래 남산 팔각정 부근에 있던 사당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남산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건설하고 남산을 일본 신토(神道) 신앙의 본거지로 조성함에 따라 국사당은 인왕산 기슭의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국사당의 유래와 관련하여, 무속신앙으로 무학대사를 모시고 있어 국사당이라 불렀다는 설과 함께, 태조가 즉위할 것을 예견한 함경도의 어느 노파와 그 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설명 국사당(國師堂)은 서울을 수호하는 신당으로 원래 지금의 남산 팔각정 부근에 있었으나, 일제가 남산에 신궁(神宮)을 지으면서 신궁보다 높은 곳에 사당이 있을 수 없다 하여 인왕산 기슭의 선바위 밑으로 이전시켰다. 사당 안에는 여러 신이 모셔져 있는데, 그중 무학대사가 있어 국사당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와 함께 또 다른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진다. 함경도 영흥(永興) 어느 마을에 노파가 살았는데, 슬하에 딸이 있었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아직 어렸을 때 그 집을 지나는데, 노파가 몰래 말하기를, 장차 임금이 될 몸이니 항상 조심하고 무언가 의심나는 일이 있거든 찾아올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던 중, 하루는 태조가 노파의 집 근처를 지나는데, 비가 몹시 내려 그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노파는 마침 조용히 할 말이 있다며 태조를 반겼다. 저녁이 되어 태조는 아랫목에 눕고, 노파의 딸은 윗목에 누웠다. 밤이 깊어지자 노파는 태조에게 앞으로의 일과 임금이 되거든 도읍을 한양에 정할 것 등의 여러 가지 일을 말하는데, 갑자기 딸이 말참견을 하였다. 노파가 딸을 꾸짖고는, 태조에게 딸을 때리라고 하였다. 이에 태조는 비밀이 누설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딸을 세게 쳤다. 그러자 노파의 딸은 사지를 떨더니 죽고 말았다. 당황한 태조가 사람을 죽였으니 관에 자신을 고발하여 죄를 받게 하라고 하였으나, 노파는 태연한 얼굴로 이 일은 자신의 잘못이고 운명이니 아이를 묻어야 한다고 하였다. 뒷산에 올라 딸의 시체를 묻은 노파는 그제야 태조의 소매를 잡고 울면서, 태조가 큰일을 이루는 데에 누가 될까 두려워 딸이 죽을 줄 알면서도 때리라 하였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곧장 이 길로 가서 대업을 이룰 것을 당부하였다. 이후, 태조는 노파를 찾기 위해 함경도 전역으로 수소문했으나 영영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조선을 세우고 한양에 도읍을 정한 태조는, 남산 중턱에 집을 지어 모녀의 초상을 그려 달고서 국사당이라 칭하고, 봄과 가을에 무당을 시켜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였다고 한다.
역사정보
시대분류 조선/미상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설화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1335년 이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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