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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30 / 남산의 유래
* 명칭 남산의 유래 이명칭
개요 남산(南山)은 서울 중구와 용산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본래 이름은 목멱산(木覓山)이었으나 태조(太祖)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이후, 도성(都城)의 남쪽에 위치한 산이라고 하여 자연스럽게 남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설명 남산(南山)은 서울 중구와 용산구의 경계부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265.2m이며 대부분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산의 본래 이름은 목멱산(木覓山)이었다. 현재의 이름인 남산은 조선왕조가 건국되고 한양을 도읍으로 정했을 때 도성(都城)의 남쪽에 있던 산이라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조선 제1대 왕인 태조(太祖) 이성계는 새 왕조를 열면서 민심을 혁신하고 새로운 정치를 펼치려면 도읍의 천도(遷都)가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제일 먼저 후보지로 지목된 곳은 계룡산이었으나, 토지가 비옥하지 않고 교통이 불편하며 금강이 멀어 백성들이 고생한다는 내용의 천도 반대 상소(上疏)가 올라왔다. 두 번째 후보지는 한양이었다. 태조의 왕사(王師, 임금의 스승 역할을 하였던 승려)였던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1405)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고 백악과 남산을 좌우 청룡과 백호로 삼으면 좋다”고 고하였다. 그러자 태조의 책사(策士)였던 정도전(鄭道傳)이 “예부터 제왕은 모두 정남쪽을 향하는 법이고, 동향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정도전의 건의에 따라 다시 잡은 자리가 북악산 밑, 경복궁 자리였다. 이에 무학은 “신라 의명대사가 한양을 수도로 정할 때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시비를 하면, 5대를 지나지 않아 왕위 찬탈(簒奪)의 문제가 생기고 200년 뒤 나라가 온통 짓밟히는 난리가 있을 것이라 했었다”고 말했다. 결국 태조는 1394년(태조 3) 8월 반대론을 물리치고 한양으로의 천도를 명했다. 그해 10월 개경(開京, 개성의 다른 이름으로 고려의 왕이 있는 도시) 을 출발하여 한양으로 들어왔으며 새 수도의 이름을 한성부로 고쳤다. 1395년(태조 4)에는 도성축조도감이라는 관청을 설치해 기초측량을 하게 했고, 1396년부터 성곽을 쌓아 1년여 만에 완성했다. 이후 목멱산은 북악산 기슭의 궁궐에서 바라볼 때 남쪽에 솟아 있는 산이라고 하여 자연스럽게 남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역사정보 1392 조선 개국 1394 한양 천도 1395 도성축조도감 설치 1396 성곽 완공
시대분류 조선/미상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설화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시작일(발생일) 미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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