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역사문화자원Database Contents

역사문화자원

  • home >
  • 역사문화자원
  • 수정

 

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25 / 홍문동의 유래
* 명칭 홍문동의 유래 이명칭
개요 홍문동(紅門洞)은 서울특별시 중구 삼각동에 있던 마을의 하나로, 조선 중종(中宗) 때 세워진 홍문(紅門)이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이 홍문은 조선시대 연산군(燕山君) 때의 상인이었던 김처선(金處善)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설명 홍문동(紅門洞)은 서울특별시 중구 삼각동에 있던 마을의 하나로, 조선시대에 홍문(紅門)이 있어 이 마을을 홍문동(紅門洞)이라 부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홍문동은 홍문선골로도 불리었는데, 조선시대 상인 김처선(金處善)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마을에 서 있던 홍문은 보기 드물게 중인(中人)을 위한 것으로, 조선 중종(中宗) 때 김처선(金處善)이라는 상인이 양부모에게 효도한 것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김처선은 지체 높은 양반가인 김굉필(金宏弼) 집안의 사람이었으나, 부모를 일찍 여의고 유모의 품에서 자랐다. 그러나 유모마저도 그가 15살 되던 해에 갑자기 죽게 되자 김처선은 다동(茶洞)에 있는 육의전(六矣廛) 상인의 집 심부름꾼이 되었다. 천애고아가 된 그는 20살이 되도록 혼인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으나, 남달리 총명하면서도 부지런한데다 귀티가 흘러 많은 이들이 그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마침 주인 안씨(安氏)에게도 과년한 딸이 있었지만, 신분이 낮아 양반 출신인 김처선과의 혼사는 생각지도 못하고, 같은 중인 가운데 성실한 이를 데릴사위로 삼아 가업을 이어주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 무렵은 연산군(燕山君)이 왕위에 있던 시기로 안팎으로 나라가 뒤숭숭하던 때였다. 안씨는 김처선이 김굉필 가문 출신임을 알고 그의 신분을 생각해 사위로 삼고자 하였다. 김처선 역시 자신의 신분을 알면서도 사대부의 길을 따르지 않고, 육의전 상인 안씨의 사위가 되었다. 그는 뛰어난 수완으로 사업을 이끌어 육의전에서 가장 빼어난 상인이 되었다. 김처선은 자신을 키워준 유모에 대한 고마움으로 유모의 제사를 극진히 모셨으며, 김처선이 죽은 뒤에도 그의 아내가 유모의 제사를 정성으로 받들었다고 한다. 후일 중종(中宗)이 왕위에 오른 뒤 김처선 부부가 길러준 어미에 대한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다 하여 집앞에 홍문을 세워 주었다. 그 뒤부터 이 마을을 홍문선골 또는 홍문동으로 불렀다고 한다. 홍문동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광교동·사자청동·소광교동 등의 일부와 통합되어 일본식 지명인 삼각정(三角町)에 속하게 되었으며, 1943년 6월에 구제(區制)의 실시로 경성부(京城府) 중구 삼각정의 일부가 되었다. 1946년에 정(町)을 동(洞)으로 개편할 때 삼각정은 삼각동이 되었다.
역사정보
시대분류 조선/미상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설화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삼각동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삼각동
시작일(발생일) 미상
인물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