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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24 / 보은단골의 유래
* 명칭 보은단골의 유래 이명칭 고운담골의 유래
개요 보은단(報恩緞)골은 중구 을지로1가 일대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마을이름이다. 조선 선조(宣祖) 때 이곳에 살았던 역관 홍순언(洪純彦)이 아무런 대가 없이 명나라 여인을 도와주어, 후일 ‘보은단(報恩緞)'이라 수놓은 비단 수십 필을 받은 데서 동명이 유래하였다.
설명 보은단(報恩緞)골은 중구 남대문로1가와 을지로1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 고운담골이라고도 불리었던 지역이다. 조선 선조(宣祖) 때 지금의 을지로1가 일대에 살았던 역관(譯官) 홍순언(洪純彦)과 관련한 일화에서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홍순언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몇 년 전, 사신을 수행하여 명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홍순언이 통주(通州)의 유곽을 거닐다가 염병으로 부모를 잃고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 몸을 팔게 되었다는 저장성(浙江省) 출신의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홍순언은 딱한 사정을 듣고 자신이 지니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 여인을 구해주었다. 여인은 자신을 구해준 대가로 동침하기를 원하였으나 홍순언은 한사코 거절하였다. 이에 여인이 홍순언의 이름을 알고자 하였으므로 그는 자신이 조선에서 온 역관 아무개라고 일러주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수년이 지나 여인은 예부시랑(禮部侍郞) 석성(石星)의 후처가 되었다. 석성은 여인으로부터 지난날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홍순언의 의로움에 감동하여 조선 사신이 올 때마다 홍순언이 왔는지 묻곤 하였다. 세월이 흘러 1584년(선조 17), 홍순언이 명나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조선 왕실의 계보가 잘못 기록되어 이를 시정하는 임무를 맡아 북경을 찾게 되었다. 명문가의 초대를 받아 간 자리에서 전에 없이 융숭한 환대를 받은 홍순언에게 큰절을 올리는 여인이 있어 자세히 보니 그녀는 지난날 자신이 유곽에서 구해주었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결국 홍순언은 석성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이에 선조는 1590년(선조 23) 홍순언을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에 책록하고, 당릉군(唐陵君)에 훈봉하였다. 또한 여인은 홍순언에게 받았던 은혜에 감사하며, 비단옷감을 손수 짜고 금은보화와 함께 선물로 주었다. 홍순언은 이를 사양했지만, 여인의 간청에 하는 수 없이 비단만을 받아왔다. 이에 석성의 일꾼들이 압록강까지 따라와 비단을 실어다주고 갔는데, 비단에는 ‘보은단(報恩緞)'이란 글씨가 수놓아져 있었다. 이 이야기가 전해져 홍순언의 집이 있던 마을을 보은단골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후에 음이 비슷한 고운담골로 와전되어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지금의 롯데호텔 앞 도로변에는 이곳이 예전에 고운담골이었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역사정보
시대분류 조선/1584년 이후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설화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1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1가
시작일(발생일) 1584년 이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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