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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23 / 남창동의 유래
* 명칭 남창동의 유래 이명칭
개요 남창동(南倉洞)은 조선시대에 선혜청(宣惠廳)의 창고가 있던 곳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는 인조(仁祖) 때 영의정을 지낸 상진(尙震)의 집인 상정승댁이 있어서 예전부터 이 일대에 있던 마을을 상동(尙洞) 또는 상정승골이라 하였다.
설명 남창동(南倉洞)이라는 동명은 1610년(광해군 2)에 설치된 선혜청(宣惠廳)의 창고가 있던 곳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선혜청은 대동미와 포전(布錢)의 출납을 관장하던 기관이었다. 남창동은 동쪽으로는 회현동1가, 서쪽과 남쪽으로는 남대문로5가, 북쪽으로는 남대문로3·4가와 인접해 있다. 남창동은 조선시대 초기에는 한성부(漢城府) 서부 양생방(養生坊)에 속해 있었다. 1751년(영조 27)부터 서부(南部) 양생방 창동계(倉洞契)의 일부였다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 창동(倉洞)과 상동(尙洞)으로 나뉘었다. 국권피탈 후 1910년 10월 한성부가 경기도 경성부(京城府)로 개칭되면서 경기도로 관할이 바뀌었다. 이어 1914년에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창동과 상동의 일부가 통합되어 일본식 지명인 남미창정(南米倉町)이 되었다. 1943년 6월에 행정개편으로 구제(區制)가 실시됨에 따라 신설된 중구 남미창정이 되었다. 광복이 되고 1946년에 이르러 정(町)을 동(洞)으로 고칠 때 중구 남창동이 되었다. 남창동에는 선혜청, 허목(許穆)의 집, 쌍회정(雙檜亭) 등의 터가 남아 있으며, 쌍회정은 선조(宣祖) 때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李恒福)과 그의 후손인 이유원(李裕元)이 살던 곳에 세워진 정자이다. 인조(仁祖) 때 영의정 상진(尙震)의 집이 있어 상동(尙洞), 또는 상정승골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남창동에는 남대문시장과 숭례문상가, 삼익패션타운 등의 전문종합시장이 있으며, 1901년에 건립된 상동교회가 있다.
역사정보 1751 한성부 서부 양생방 창동계에 일부 편입 1894 창동과 상동에 분할 귀속 1910 경기도 경성부 귀속 1914 창동과 상동을 통합하여 남미창정으로 명명 1946 중구 남창동으로 동명 제정
시대분류 조선/1610년 이후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설화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남창동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남창동
시작일(발생일) 1610년 이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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