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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20 / 무학대사 이야기1
* 명칭 무학대사 이야기1 이명칭
개요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1405) 이야기는 태조(太祖)의 왕사(王師, 임금의 스승 역할을 하였던 승려)였던 무학대사와 한양도성(漢陽都城)의 축조에 얽혀 전해 내려오는 구전설화이다. 이 이야기는 변이되어 왕십리(往十里) 유래담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설명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1405)의 법명은 자초(自超), 성은 박(朴)씨이며 호는 무학(無學), 당호(幢號)는 계월헌(溪月軒)이다. 경상남도 합천군(陝川郡) 삼가면에서 출생하여, 1344년에 출가해 소지선사(小止禪師)의 제자로 승려가 되고, 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서 불법을 배웠다. 1353년(공민왕 2) 원(元)나라 연경(燕京)에서 유학했으며, 1356년 귀국하여 1373년에 왕사(王師, 임금의 스승 역할을 하였던 승려)가 된 혜근의 법을 이어받았다. 고려 말 퇴락하는 불교를 비판하였고, 이성계를 만나 그가 새로운 왕이 될 것이라 예견했다. 1392년 조선이 개국하자 태조(太祖)의 왕사가 되었다. 태조의 명을 받아 도읍지 선정과 도성의 축조를 맡게 된 무학은 한양(漢陽)을 도읍터로 정한 뒤 대궐을 지으려고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대궐이 번번이 허물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이에 상심한 무학이 어느 곳을 지나는데, 한 노인이 논을 갈면서 소를 향해 “이랴, 이 무학이보다 미련한 놈의 소!”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놀란 무학이 노인에게 다가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그 까닭을 묻자, “한양 땅이 학(鶴) 터인데 등에 무거운 짐을 실었으니 학이 날개를 칠 것 아니냐, 그러니 궁궐이 무너진다. 성부터 쌓으면 학의 날개가 눌려져 꼼짝 못하므로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에 무학이 노인의 말대로 하자 과연 대궐이 무너지지 않고 완성되었다. 한편, 이 이야기는 변이되어 왕십리(往十里) 유래담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무학이 도읍터를 정하기 위해 방황할 때, 한 노인이 나타나 “이곳에서 십리만 더 들어가라”고 해서 가보았더니 좋은 터가 나타났다는 설화이다. 이야기에 따르면 노인이 십리를 들어가라 했기에‘가다’라는 뜻의 한자 왕(往)과 십리(十里)를 써서 그곳을 왕십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설화 속 노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풍수지리에 능했던 통일신라 말기의 승려,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의 후신이라고 한다.
역사정보
시대분류 미상/미상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설화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미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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