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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12 / 석전
* 명칭 석전 이명칭 편전(便戰)
개요 석전(石戰)은 사람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돌팔매질로 승부를 겨루던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놀이이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매년 정월 대보름날 서소문 밖 만리현, 청계천 가산(假山) 일대, 동대문 밖 안감내, 신당동의 무당내 등에서 석전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설명 석전(石戰)은 많은 사람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서로 돌팔매질을 하여 승부를 겨루던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놀이로 예로부터 주로 마을 대항 놀이로 즐겨하였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전투적 놀이 또는 실전 연습의 놀이라는 설과, 과거 마을마다 군대에 입영할 장정을 고르는데 어느 마을이 가장 힘세고 용감한 장정들을 배출시키는가를 경쟁하던 관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등이 전해진다. 석전은 주로 마을과 마을 사이의 공터에서 행해졌는데, 두 편으로 나뉜 사람들이 개천이나 강을 경계선으로 하여 수백 보의 거리를 두고서 서로 돌멩이를 던지며 싸웠다. 참가 인원은 마을의 크기에 비례하는데 많은 경우에는 한쪽이 수백 명이나 되었으며, 마을이 작은 경우 10명을 넘지 않는 곳도 있었다. 이 놀이는 낮에 아이들로부터 시작되다가 어른들이 참가함으로써 더욱 격렬해지는데, 처음에는 먼 곳에서 돌을 던지다 점차 거리를 좁혀 던졌으며 먼저 달아나는 편이 패하게 된다. 이때 돌은 손으로 던지거나 망패·망팔매·줄팔매 등으로 불리는 투석기(投石機)를 사용하였다. 석전은 마을 사이에 생겨난 나쁜 감정을 푸는 기회도 되었으며, 힘을 겨룸으로써 주민들을 더욱 강건하게 만드는 단순한 놀이 이상의 행사였다. 석전이 벌어지면 구경꾼들은 위험하지 않은 곳으로 이동했고, 솜을 넣어 만든 겨울옷을 입었기 때문에 부상자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마가 깨지고 팔이 부러지더라도 놀이를 그치지 않아 간혹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치안을 담당한 한성부 등 관아에서 특별히 석전을 금지하기도 했으나, 워낙 깊이 뿌리내린 풍습이라서 좀처럼 막지 못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세시풍속지인 《경도잡지(京都雜誌)》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에 따르면 매년 정월 대보름날 삼문(三門, 숭례문·돈의문·소의문) 밖 사람들과 아현(阿峴, 애오개) 사람들이 서소문 밖 만리현(萬里峴) 위에서 석전을 겨루었다고 한다. 또한, 청계천 하류의 양쪽 가산(假山) 일대와 동대문 밖의 안감내, 신당동의 무당내 또한 석전을 벌이던 곳이었다고 한다.
역사정보 삼국시대 석전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
시대분류 삼국(추정)/미상
주제분류 문화/행사/풍물놀이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미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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