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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06 / 진고개 굴우물
* 명칭 진고개 굴우물 이명칭 굴정(窟井)
개요 진고개 굴우물은 충무로2가 진고개에 있던 우물로서, 굴정(窟井)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후기의 문신 이민구(李敏求, 1589~1670)가 어릴 때 진고개에서 놀던 중 바위 밑에서 샘물이 솟는 것을 보고 동네 아이들과 함께 우물을 팠는데, 그 후 점점 더 파여지면서 마침내 굴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설명 진고개 굴우물은 조선시대 진고개(현 충무로2가 세종호텔 자리)에 있었던 우물로, 한자로는 굴정(窟井)이라고도 하였다. 《한경지략(漢京識略)》에는 “굴정은 남부 이현(泥峴)에 있는데 우물이 깊고 굴이 있었기 때문에 그 명칭이 유래되었다”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굴정은 처음부터 우물로 사용했던 곳이 아니라 자연스레 노출된 샘물 같은 곳으로, 이를 처음 발견하여 만든 사람은 《지봉유설(芝峯類說)》의 저자 이수광(李睟光)의 아들인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였다. 1601년(선조 34) 이민구가 13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진고개에서 놀다가 바위틈에서 맑은 물이 샘솟듯이 흐르는 것을 발견하고 동네 아이들을 모아 힘을 합쳐 우물을 파고서 가장자리를 돌로 둘러놓았다. 그 뒤부터 길을 가던 나그네들도 지나가다가 이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는데, 항상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던 우물의 물구멍이 점점 더 크게 파여지면서 굴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이민구는 관직에 올라 경기도관찰사 등의 벼슬을 역임하고, 정묘호란(丁卯胡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을 치른 후 잠시 관직에서 물러나 있다가 어느 날 우연히 굴우물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에 아이들과 함께 파놓았던 그 우물이 어느새 고색창연한 우물이 된 것을 보고 감회에 젖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지었다. 손으로 뚫을 때는 한 줄기 샘물이었는데 어느덧 50년의 세월이 지나갔네. 돌 속의 한 줄기 샘물은 줄지 않았는데도 그 속에서 늙고 죽은 사람은 누구누구던가 이 시는 《동주집(東州集)》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굴정은 이민구가 만든 것임을 추측 할 수 있다.
역사정보
시대분류 조선/1601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설화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2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2가
시작일(발생일) 1601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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