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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004 / 이기축 부인
* 명칭 이기축 부인 이명칭
개요 이기축 부인 설화는 자신의 집 머슴이었던 이기축(李起築)과 혼인하여 남편을 물심양면 내조한 정씨 부인에 대한 일화로, 지금의 서대문 인근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정씨 부인은 지금의 서대문인 새문 밖에서 주막을 운영하며, 세상을 보는 남다른 눈으로 남편을 인조반정의 공신으로 만들어 주요관직에 오르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설명 이기축 부인 설화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봉쇄되어 있던 조선시대에 내조를 통해 남편을 출세의 길로 이끈 정씨 부인에 관한 이야기로, 지금의 서대문 인근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광해군(光海君) 때 이기축(李起築, 1589~1645)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세종(世宗)의 형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의 후손이었지만, 부모를 일찍 여의고 집이 몹시 가난해 충청도 홍주의 정씨 집에서 밥이나 얻어먹는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다. 주인집에는 얼굴이 예쁜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인물뿐만 아니라 재주가 비상하여 두루 좋은 혼처를 구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정씨의 딸은 좋다는 혼처를 모두 마다하고, 머슴 이기축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우겼다. 부모는 아무리 야단을 쳐도 끄떡 않는 딸을 이기축과 함께 내쫓아버렸다. 두 사람은 한양으로 올라가 새문 밖에 집을 얻어 선술집을 차렸다. 정씨 부인은 주막을 운영하며, 남편에게는 글을 배우게 하고 남산에 올라가 무술을 닦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떼의 사람들이 들어와 술상을 벌였다. 부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에게 잘 빚은 술과 좋은 안주를 내어놓았다. 그리고 은잔을 내어 잔에 넘치도록 술을 가득 붓고는 좌중의 선비에게 바쳤다. 이어 놋잔에 술을 따라 모두에게 공손히 잔을 돌렸다. 향기 좋은 술에 거나하게 취한 이들이 술값이 얼마냐고 물었지만 정씨 부인은 한사코 마다하였다. 이튿날, 정씨 부인은 주막을 닫고 이기축을 불러 맹자(孟子)책을 주었다. “여기 이 문장의 뜻을 어제 제가 은 술잔을 올렸던 분께 여쭈세요. 누가 이리 시키더냐 묻거든 제게 미루고 물러 가라거든 오십시오.” 아무것도 모르는 이기축은 책을 옆구리에 끼고 부인이 일러준 곳으로 향하였다. 은 술잔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선조의 손자 능양군(綾陽君)으로 부인이 물어보라 한 것은, 탕왕(湯王)이 걸(榮)을 내쫓고 주무왕(周武王)이 주(料)를 쳤다는, 이른바 폭군을 몰아내는 내용이었다. 지난밤 주막에 모여 광해군을 쫓아내고자 반역을 모의했던 능양군은 크게 당황하여 무리들을 이끌고 술집으로 향하였다. 이에 정씨 부인은 공손한 예로 능양군을 맞으며 술상을 내왔다. 그리고는 자신이 그들의 모의에 대해 알고 있다며 거사에 남편을 끼워 달라 부탁하는 것이었다. 능양군이 이를 어찌 알았느냐 묻자, 부인은 자신이 어려서 술수(術數)에 능한 도사를 만나 점치는 법을 배웠고, 이에 세상이 바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또한 머슴 이기축의 얼굴을 보니 귀하게 될 상인지라 부모의 뜻을 어기고 혼인하였으며, 이 자리에 선술집을 차리고 능양군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이후, 능양군은 이기축의 주막에서 반역을 도모하는 모임을 갖게 되었고, 부인은 그들을 정성껏 뒷바라지했다. 이기축도 남산에 올라 도성 내 움직임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반정은 결국 성공하였다. 한때는 이름도 없이 기축년(己丑年)에 태어나 기축이라도 불리며 머슴으로 지냈던 이기축은, 반정공신으로 인정받아 삼척첨사·장단부사를 지냈으며, 인조(仁祖)가 손수 이름까지 기축(起築)이라고 지어주었다. 이는 모두 이기축의 뒤에서 남편을 물심양면으로 내조한 정씨 부인 덕분이라고 전해진다.
역사정보
시대분류 조선/1589년 이후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설화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1589년 이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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