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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89 / 씨름
* 명칭 씨름 이명칭
개요 씨름은 두 사람이 샅바나 띠를 잡고 힘과 기술을 겨뤄 상대를 쓰러뜨리는 우리 민족 고유의 운동이다. 때와 장소에 구애 없이 수시로 행해졌으나, 특히 단오·백중·한가위 등의 명절에 즐겨했다. 1927년 조선씨름협회가 결성되면서 이후 현대식 경기인 스포츠로 자리잡게 되었다.
설명 씨름은 두 사람이 샅바나 띠 또는 바지의 허리춤을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는 우리 민족 고유의 운동이다. 서로 마주본 상태에서 무릎을 구부리고 오른손으로는 상대의 허리를, 왼손으로는 상대의 오른다리를 잡은 후 동시에 일어나 상대를 먼저 쓰러뜨리는 쪽이 승리한다. 씨름은 사회의 경사스러운 일에 수시로 행해졌다. 예로부터 음력 5월 5일 단오절이 되면 남자들은 넓은 모래사장이나 잔디밭에 모여 마을 간의 힘겨루기 내기로 씨름을 즐겼는데, 특히 조선시대 서울 남산 잔디밭에서 벌어진 단오날의 씨름이 볼 만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음력 7월 보름에는 백중(百中)이라 하여, 각 지방의 힘센 장사들을 모아 씨름으로 천하장사를 가려냈으며, 추석 명절에도 각처의 장사들이 모여들어 자기 고장과 자신의 명예를 걸고 씨름경기에 참가하곤 했다. 씨름 경기의 승자에게는 부상으로 황소 한 마리를 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은 씨름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 농민이었으며, 민가에서 가장 귀한 재산 중의 하나가 소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씨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구려 고분벽화로, 4세기 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현(集安縣)의 씨름무덤에, 씨름을 겨루는 남성 2명과, 심판을 보는 노인이 그려져 있다. 심판이 있다는 것은 씨름에 엄격한 규칙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로 미뤄볼 때 이미 오래전부터 성행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씨름은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더욱 대중화되었는데,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의 풍속도에 씨름 그림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시기 씨름이 널리 행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씨름이 현대식 스포츠 경기로 발돋움한 것은 1927년 전후의 일이다. 이때 결성된 조선씨름협회는 그해 9월 제1회 ‘전조선씨름대회’를 개최하고 거의 매년 정기적으로 대회를 열었으며, 1946년 조선씨름협회가 대한씨름협회로 개편되면서 씨름 대회 역시 ‘전국씨름선수권대회’로 바뀌었다. 또 프로팀이 생기면서 상품 대신 상금을 주게 되었다. 이후 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침체기를 달리던 씨름은, 1983년 새로 결성된 민속씨름협회가 ‘천하장사대회’를 개최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고, 이만기·이준기·강호동 등 스타 선수들도 다수 배출했다. 그러다가 1997년 IMF 경제위기로 팀들이 잇따라 해체되면서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대학 씨름 등을 중심으로 다시 부흥을 꾀하고 있다.
역사정보
시대분류 미상/미상
주제분류 문화/행사/풍물놀이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미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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