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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76 / 봉래동1가
* 명칭 봉래동1가 이명칭
개요 봉래동1가(蓬萊洞一街)는 숭례문(崇禮門) 남서쪽, 세종대로와 칠패로 사이에 위치한다. 봉래동1가의 동명은 이곳 일대에 있었던 봉래교(蓬萊橋)라는 다리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봉래동1가에는 구두제조 및 피혁(皮革)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설명 숭례문(崇禮門) 남서쪽, 세종대로와 칠패로 사이에 위치한 봉래동1가(蓬萊洞一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서부 반석방(盤石坊)에 속했던 지역으로 일제강점기에 봉래정1정목(蓬萊町一丁目)이라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봉래동1가로 되었다. 봉래동1가의 동명은 이곳 일대에 있었던 봉래교(蓬萊橋)라는 다리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봉래동1가에는 조선시대에 칠패시장(七牌市場)이 있었다. 칠패시장은 조선시대 한양의 대표적인 난전시장(亂廛市場)의 하나로, 특히 어물전이 유명하였다. 그 이유는 남대문과 서소문 사이에 자리잡고 있어서 사람들의 출입이 용이하였고, 용산·마포 등과도 가까워 어물의 반입이 쉬웠기 때문이다. 예전에 봉래동1가·순화동·의주로2가에 걸쳐서 자암동(紫岩洞)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의 이름은 염천교 동쪽 철도 근방의 바위가 자색 빛이 나기 때문에 자연(紫烟)바위·자색바위·자암·잼배라고 부르는 데서 유래하였다. 자암동에는 조선시대에 객주(客主)가 많이 모여 있었다. 자암동의 객주가 취급했던 물품은 주로 건어물과 생선·과일·젓갈 등이었다. 이 가운데 거래량이 가장 많은 품목은 북어와 젓갈류인데 새우·조개·꼴뚜기·밴댕이·황석어 등으로 만든 젓갈류가 주종을 이루었다. 봉래동1가에는 구두제조 및 피혁(皮革)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서부 반석방(盤石坊)에 속함 일제강점기 봉래정1정목(蓬萊町一丁目) 1946 봉래동1가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봉래동1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봉래동1가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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