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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67 / 의주로2가
* 명칭 의주로2가 이명칭
개요 의주로2가(義州路二街)는 서소문역사공원 일대에 위치한다. 의주로2가의 동명은 의주(義州)로 가는 길목이라는 뜻에서 일제강점기에 의주통2정목(義州通二丁目)이라 하던 것을 우리말로 고친 것이다.
설명 서소문역사공원 일대에 위치한 의주로2가(義州路二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서부 반석방(盤石坊)에 속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의주통2정목(義州通二丁目)이라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서대문구 의주로2가로 되었다. 1975년 10월 1일(대통령령 제7816호) 관할구역이 변경되어 중구 의주로2가가 되었다. 의주로2가의 동명은 의주(義州)로 가는 길목이라는 뜻에서 일제강점기에 의주통2정목이라 하던 것을 우리말로 고친 것이다. 현재 서소문역사공원 자리는 예전에는 참터(斬터, 죄인의 목을 베어 죽이는 형벌을 처하는 곳)로 욱천(旭川)가 백사장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대역죄를 지은 중죄인은 현 서울특별시청이 위치한 군기시(軍器寺) 앞에서, 사회규범을 어긴 죄인은 서소문 밖인 이곳에서 처형되었다고 하는데 조선 순조(純祖) 이후에는 천주교인이 이 서소문 밖 참터에서 주로 처형되었다. 그 후 이곳에는 수산시장이 있었다가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이전해 갔는데, 조선시대에는 용산 방향으로 흐르는 욱천을 거슬러온 배가 드나드는 곳인 농포(農浦)에서 어물과 조개 등을 팔았다. 또한 이 동 남쪽에는 염천교(鹽川橋)가 있는데, 이곳에 화약을 제조하는 염초청(焰焇廳)이 있어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본래 염청교(焰廳橋)·염초청다리라고 하다가 음이 변하여 염천교가 되었다. 이 동의 명칭이 된 의주로(현 통일로)는 조선시대 사신들이 의주를 거쳐 중국으로 가던 주요 통행로였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서부 반석방(盤石坊)에 속함 일제강점기 의주통2정목(義州通二丁目) 1946 서대문구 의주로2가 동명제정 1975 중구 의주로2가 구역변경
시대분류 현대/1975(구역변경)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의주로2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의주로2가
시작일(발생일) 1975년(구역변경)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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