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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65 / 순화동
* 명칭 순화동 이명칭
개요 순화동(巡和洞)은 염천교교차로에서 서대문역교차로에 이르는 통일로 동쪽에 위치한다. 순화동의 동명은 1946년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변경할 때 예전에 순화동·봉래동1가에 걸쳐 있던 마을인 순청동(巡廳洞)의 ‘순(巡)’자와 일제강점기의 명칭인 화천정(和泉町)의 ‘화(和)’자를 따서 순화동이라 하였다.
설명 염천교교차로에서 서대문역교차로에 이르는 통일로 동쪽에 위치한 순화동(巡和洞)은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서부 반석방(盤石坊)에 속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화천정(和泉町)이라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서대문구 순화동이 되었다. 이후 1975년 10월 1일(대통령령 제7816호) 중구 순화동으로 구역변경이 되었다. 이 동의 동명 유래는 예전에 이 일대에 있던 마을인 순청동(巡廳洞)의 ‘순(巡)’자와 화천정의 ‘화(和)’자를 따서 1946년에 순화동이 된 것이다. 숭례문과 서소문 사이에 있었던 순청동은 조선시대 야간 순찰을 지휘 감독하던 곳인 순청이란 관아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대문역이 있던 동쪽, 즉 호암아트홀 앞의 순화빌딩이 세워져있는 일대는 조선시대에 수렛골이라 하였다. 1902년에 그려진 서울지도에 보면 서소문밖의 이 지역을 수레골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수렛골은 한자로 차동(車洞), 또는 추모동(追慕洞)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수렛골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이곳에 숙박시설이 몰려 있어서 수레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경식략(漢京識略)》에 보면 수렛골에는 조선시대 선조(宣祖) 때 종2품 대사헌을 지낸 모당(慕堂) 홍리상(洪履祥, 1753~1827)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염천교 지하차도 동쪽 일대를 예전에는 잼배·자암동(紫岩洞)이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이곳에 붉은 빛이 나는 자연암(紫烟岩)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순청동에는 유관순기념관, 호암아트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연통부 터 등이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서부 반석방(盤石坊)에 속함 일제강점기 화천정(和泉町) 1946 서대문구 순화동 동명제정 1975 중구 순화동으로 구역변경
시대분류 현대/1975(구역변경)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순화동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순화동
시작일(발생일) 1975년(구역변경)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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