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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60 / 만리동2가
* 명칭 만리동2가 이명칭
개요 만리동2가(萬里洞二街)는 만리동 고개, 만리재로 북쪽에 위치한다. 만리동2가의 동명은 만리현(萬里峴, 현재 만리동고개)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일설(一說)에는 세종 때 한글 창제를 반대했던 최만리(崔萬理)가 살던 곳이라 하여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이곳에는 손기정체육공원이 있다.
설명 만리동 고개, 만리재로 북쪽에 위치한 만리동2가(萬里洞二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반석방(盤石坊)에 속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봉래정4정목(蓬萊町四丁目)이라 불리다가 1946년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만리동2가로 되었다. 만리동2가의 동명은 만리현(萬里峴, 현재 만리동고개)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일설(一說)에는 세종 때 한글 창제를 반대했던 최만리(崔萬理)가 살던 곳이라 하여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만리재는 만리동2가에서 마포구 공덕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서울역 일대와 마포 일대를 연결하는 교통상 주요한 역할을 하는 고개였다. 이 고개는 비교적 높아서 북쪽에 있는 작은 고개인 애오개와 비교해서 큰 고개라고도 했다. 또한, 예전부터 이 일대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사람들이 돌팔매로 편싸움을 하던 곳으로도 유명했다. 일설(一說)에 이 동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고도 하는 최만리는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1444년(세종 26)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곧은 성품으로 부정과 타협을 모르는 청렴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전에 만리동2가 6-1번지 일대에는 양정중·고등학교가 있었으나 양천구 목동으로 이전하고 현재는 그 자리에 손기정체육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1936년 독일 베를린 하계 올림픽경기에서 마라톤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孫基禎, 1912~2002)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의 모교였던 양정중·고등학교 자리에 1987년에 조성되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반석방(盤石坊)에 속함 일제강점기 봉래정4정목(蓬萊町四丁目) 1946 만리동2가(萬里洞二街)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만리동2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만리동2가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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