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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58 / 충무로5가
* 명칭 충무로5가 이명칭
개요 충무로5가(忠武路五街)는 동호로와 창경궁로 사이의 퇴계로 남북쪽에 위치한다. 충무로의 동명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왜적을 물리치고 우리 국가와 민족을 구한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의 시호 ‘충무공(忠武公)’에서 비롯되었다. 이곳 퇴계로 주변은 오토바이거리로 불린다.
설명 동호로와 창경궁로 사이의 퇴계로 남북쪽에 위치한 충무로5가(忠武路五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명철방(明哲坊)과 낙선방(樂善坊)의 일부에 속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본정5정목(本町五丁目)으로 불리다가 1946년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충무로5가로 되었다. 충무로5가의 동명은 일제강점기 진고개 일대에 놓여있던 길을 본정통(本町通)이라 불렀던 것을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왜적을 물리치고 우리 국가와 민족을 구한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의 시호를 따라 충무로라 한데서 비롯되었다. 조선시대 이곳 일대에 있었던 묵사동(墨寺洞, 오늘날의 남산 밑 언저리)에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이 살았다. 동인이던 그가 서인 정철(鄭澈)의 처벌을 논의할 때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자 온건파로서 남산 밑에 거주하여 남인이라 하고 이발(李撥)은 북악산 아래 거주하여 북인이라 했다. 유성룡은 1566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이조판서·우의정·좌의정에 올랐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都體察使)로 군무를 총괄하고 이순신과 권율 같은 명장들을 등용시켰으며, 이어 영의정이 되어 선조를 따라 평양에 이르렀을 때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일시 면직되었다가 다시 영의정이 되어 왜란을 수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가 이순신을 천거하여 일본 수군을 격파함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된 것은 묵사동과 이순신이 살던 건천동(乾川洞, 마른내골)이 이웃해 있어서 일찍부터 두 사람 사이에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곳 북쪽에는 묵정어린이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이곳 퇴계로 주변으로는 오토바이 상가가 형성되어 있어 일명 오토바이거리라고도 불린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명철방(明哲坊)·낙선방(樂善坊) 일부에 속함 일제강점기 본정5정목(本町五丁目) 1946 충무로5가(忠武路五街)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5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5가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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