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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52 / 인현동2가
* 명칭 인현동2가 이명칭
개요 인현동2가(仁峴洞二街)는 PJ호텔과 신성상가를 중심으로 마른내로 남북에 위치한다. 인현동의 동명은 인현동1가와 인현동2가에 걸쳐 었던 ‘인성붓재[仁峴]’라는 고개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곳에는 인현시장, 신성상가, 진양상가·삼풍상가 일부, PJ호텔, 덕수중학교 등이 있다.
설명 PJ호텔과 신성상가를 중심으로 마른내로 남북에 위치한 인현동2가(仁峴洞二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성명방(誠明坊)과 낙선방(樂善坊)의 일부에 속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앵정정2정목(樓井町二丁目)이라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인현동2가로 되었다. 이곳의 동명은 인현동1가·인현동2가·예관동에 걸쳐 었던 ‘인성붓재’라는 고개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인성붓재는 이 고개 밑에 조선 선조의 일곱째 아들인 인성군(人城君) 영(瑛)이 살았기 때문에 인성군의 집이 있는 고개라는 의미이다. 이를 한자 명칭으로 인성부현(仁城府峴)·인성현·인현이라고 하였다. 인현동2가는 조선시대에 일본사신 유숙소인 동평관(東平館)이 있어서 이 일대를 왜관동(倭館洞)이라 하였다. 동평관은 일본 사신이 들어와 머물던 곳으로 조선 초기부터 일본과 왕래가 있어서 그들이 머물 곳을 마련해 주었는데, 1420년에는 일본인들이 질서를 어기므로 이곳에 감호관(藍護官)을 두고 감시케 하는 한편 동평관 주위로 울타리까지 둘렀다고 한다. 1445년에는 일본인들이 담을 넘어 민가에 들어가 행패를 부리자 의금부(義禁府)에서 이들을 체포하여 구금한 일이 있었고, 그 뒤 삼포왜란 때에도 의금부에서 10여명을 감금하는 등 동평관에 머무르는 일본인들이 일으킨 폐단이 많았다. 임진왜란 이후 동평관은 일본 사절의 상경을 불허하면서 폐쇄되었다. 이곳에는 인현시장, 신성상가, 진양상가·삼풍상가 일부, PJ호텔, 덕수중학교 등이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성명방(誠明坊)과 낙선방(樂善坊)의 일부 일제강점기 앵정정2정목(樓井町二丁目) 1946 인현동2가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2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2가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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