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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88 /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노인정 터
* 명칭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노인정 터 이명칭
개요 노인정(老人亭)은 익종(翼宗, 1809~1830, 효명세자)의 장인인 풍은부원군(豐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 1776~1846)이 남산기슭에 세웠다는 정자로,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대략 1840년경이라고 전해진다. 이 정자는 1894년(고종 31) 일본의 강요로 내정개혁 문제에 대해 3차례에 걸쳐 신정희(申正熙)와 일본공사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 사이에 협상이 진행되었던 곳이다. 풍원부원군 조만영의 노인정 터는 그 노인정이 있던 곳이다. 정자는 사라지고 노인정 터 표지석이 남아 있다.
설명 풍은부원군(豐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노인정(老人亭) 터는 익종(翼宗, 1809~1830, 효명세자) 장인인 풍은부원군 조만영이 지었다는 노인정(老人亭)이 있던 곳이다. 조만영은 그의 딸이 익종의 왕비가 되고, 그가 낳은 헌종(憲宗)이 왕위에 오르자 동생인 조인영(趙寅永)과 함께 안동 김씨에 대립하여 세도정치를 한 인물이다. 노인정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6길 30에 있었다. 이 노인정의 이름은 남쪽 하늘의 별자리인 노인성(老人星)에서 빌어왔다고도 하고, 조만영이 만년에 이 정자에서 교유하던 이들이 관직에서 물러난 늙은 관료들이었던 데서 그 명칭이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노인정 주변은 풍양 조씨들의 근거지가 되었는데, 이를 나타내는 것이 노인정과 가까운 곳에 있는‘조씨노기(趙氏老基)’ 바위글씨이다. 이 정자는 1894년(고종 31) 일본의 강요로 내정개혁 문제에 대해 7월 10일부터 15일까지 3차례에 걸쳐 내아문독판(內衙門督辦) 신정희(申正熙)와 일본공사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 사이에 협상이 진행되었던 장소로, 갑오개혁의 시발점이 된 곳이기도 하다. 이 협상의 결과 조선이 일본의 내정간섭안을 거부하자 일본은 7월 23일 경복궁을 점령한 뒤, 서울의 조선병영을 습격하여 무장을 해제시켰다. 그리고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데 걸림돌이 된 청과 전쟁을 시작하였다. 노인정은 1936년까지만 남산기슭에 그 모습이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정자 대신 1993년에 설치한 표지석만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6길 30 일대의 공동주택 진입로에 남아 있다.
역사정보 1840(추정) 노인정 건립
시대분류 조선/1840(추정)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6길 30(필동2가 134-2)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2가
시작일(발생일) 1840(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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