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역사문화자원Database Contents

역사문화자원

  • home >
  • 역사문화자원
  • 수정

 

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48 / 을지로5가
* 명칭 을지로5가 이명칭
개요 을지로5가(乙支路五街)는 을지로와 동호로가 교차하는 을지로5가교차로 주변 일대에 위치한다. 을지로5가의 동명은 이곳이 일제강점기에 황금정5정목(黃金町五丁目)으로 불리던 것을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성을 따서 을지로5가로 개칭된 것이다. 이곳 북동쪽에는 훈련원공원이 넓게 자리잡고 있고, 을지로 변에는 스테인레스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설명 을지로와 동호로가 교차하는 을지로5가교차로 주변 일대에 위치한 을지로5가(乙支路五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명철방(明哲坊)에 속했던 지역으로 일제강점기 황금정5정목(黃金町五丁目)으로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을지로5가로 되었다. 을지로의 동명은 세종로·충무로 등과 같이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위인 가운데 한 분인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성(姓)을 따온 것이다. 1914년 지금의 을지로입구에 해당되는 부근을 구리개(을지로1가와 을지로2가 사이에 있던 고개) 또는 동현(銅峴)이라 불렀는데 이 뜻을 연유로 한자로 다시 옮긴 것이 황금정5정목이었고 1946년에 을지로5가로 개칭되었다. 을지로5가는 조선시대에 남촌(南村)이라 불렀던 지역으로 장인·상인·하급관리가 많이 살고 있었다. 이곳에는 청짜다리·청자교(淸字橋)라는 다리가 있었는데, 이는 이 다리에 ‘청(淸)’자가 새겨져 있어서 붙여진 것이다. 그래서 이 부근을 청교동(淸橋洞)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이곳에는 을지시장이 있었는데 동대문시장·방산시장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이 시장은 1932년 7월에 일본인이 세운 황금사설시장(黃金私設市場)에서 비롯되었다. 1939년에 황금정시장(黃金町市場)으로 바뀌었다가 광복 후 적산(敵産, 광복 이후 미군정이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이 설립한 기업·소유했던 부동산·반입했다가 가져가지 않은 동산 등을 총칭해서 사용한 말)으로 처리 되어 1948년에 황금시장으로 되었다가 6·25전쟁 때 파괴되어 일반상가로 건설되었다. 을지로5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토지와 상권을 장악하던 곳이었다. 1924년 6월호 《개벽(開闢)》잡지를 보면 당시 을지로5가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주택 수는 120호였는데 조선인은 300호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을지로5가에 살던 조선인이 일본인의 세력에 밀려 마포나 도화동·청파동으로 밀려난 것이다. 이곳 북동쪽에는 훈련원공원이 넓게 자리잡고 있고, 을지로 변에는 스테인레스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명철방(明哲坊)에 속함 일제강점기 황금정5정목(黃金町五丁目) 1946 을지로5가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5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5가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