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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47 / 을지로4가
* 명칭 을지로4가 이명칭
개요 을지로4가(乙支路四街)는 지하철2·5호선 을지로4가역 주변 일대에 위치한다. 을지로4가의 동명은 이곳이 일제강점기에 황금정4정목(黃金町四丁目)으로 불리던 것을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성을 따서 을지로4가로 개칭된 것이다. 을지로4가도 을지로3가와 마찬가지로 건축자재를 취급하는 상가가 형성되어 있고 주방용가구점과 인테리어전문점도 많이 들어서 있다.
설명 지하철2·5호선 을지로4가역 주변 일대에 위치한 을지로4가(乙支路四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성명방(誠明坊)과 낙선방(樂善坊)에 속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황금정4정목(黃金町四丁目)으로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을지로4가로 되었다. 을지로의 동명은 세종로·충무로 등과 같이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위인 가운데 한 분인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성(姓)을 따온 것이다. 1914년 지금의 을지로입구에 해당되는 부근을 구리개(을지로1가와 을지로2가 사이에 있던 고개) 또는 동현(銅峴)이라 불렀는데 이 뜻을 연유로 한자로 다시 옮긴 것이 황금정4정목이었고 1946년에 을지로4가로 개칭되었다. 예전에 을지로4가와 을지로5가를 이어주는 곳에는 청녕교(靑寧橋)가 있었다. 이 다리 이름은 성종의 셋째 딸 공신옹주(恭愼翁主)와 결혼한 청녕위(靑寧尉) 한경침(韓景琛)이 부근에 살아서 그렇게 불리어졌다. 또한 을지로4가와 인현동2가에 걸쳐서는 독우물골이 있었는데 마치 우물의 모양이 돌절구처럼 생겼다하여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을지로4가는 일제강점기 때 많은 일본인들이 토지와 상권을 장악하였다. 1924년 당시 주택현황을 보면 한국인은 313호, 일본인 226호가 거주했다. 1910년대 말에는 을지로4가에 황금관(黃金館)과 광무대(光武臺)라는 무성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영화관들은 1930년대 후반에 문을 닫았다. 그 후 이곳에는 국도극장이 새로이 생겨났다. 국도극장은 1946년 10월 15일에 설립되었는데 서울 중심가의 개봉관 가운데서 방화(邦畵)를 많이 상영하는 극장이었다. 을지로4가도 을지로3가와 마찬가지로 건축자재를 취급하는 상가가 형성되어 있고 주방용가구점과 인테리어전문점도 많이 들어서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성명방(誠明坊)과 낙선방(樂善坊)에 속함 일제강점기 황금정4정목(黃金町四丁目) 1946 을지로4가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4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4가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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