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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946 / 을지로3가
* 명칭 을지로3가 이명칭
개요 을지로3가(乙支路三街)는 지하철2·3호선 을지로3가역 주변지역에 위치한다. 을지로3가의 동명은 이곳이 일제강점기에 황금정3정목(黃金町三丁目)으로 불리던 것을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성을 따서 을지로3가로 개칭된 것이다. 현재 이곳에는 을지로동주민센터를 비롯하여 인테리어·건축자재·조명관련 상가와 인쇄소·출판사 등이 밀집되어 있다.
설명 지하철2·3호선 을지로3가역 주변지역에 위치한 을지로3가(乙支路三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훈도방(薰陶坊)과 성명방(誠明坊)에 속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황금정3정목(黃金町三丁目)으로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을지로3가로 되었다. 을지로의 동명은 세종로·충무로 등과 같이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위인 가운데 한 분인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성(姓)을 따온 것이다. 1914년 지금의 을지로입구에 해당되는 부근을 구리개(을지로1가와 을지로2가 사이에 있던 고개) 또는 동현(銅峴)이라 불렀는데 이 뜻을 연유로 한자로 다시 옮긴 것이 황금정3정목이었고 1946년에 을지로3가로 개칭되었다. 을지로3가와 입정동·수표동에 걸쳐있던 마을을 시궁골·시금동(詩琴洞)·시동(詩洞)이라 하였는데 그 유래는 영조 때 학자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이 수표교 동쪽에 살면서 벗들과 시금(詩琴, 시를 읊고 거문고를 켜다)을 즐겼기 때문이다. 또한 을지로3가·저동2가·초동에 걸쳐 있는 마을을 신을 파는 가게들이 있어서 신전골이라 하였고 한자로 이동(履洞)이라 하였다. 이 마을에는 정조의 사위 홍현주(洪顯周)의 집인 금옥당(金玉堂)이 있었다. 광복 직후 을지로3가에는 많은 고물상가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을지로3가를 지나다 보면 길 양쪽에 있는 상점이 거의 시멘트 대리점, 타일이나 목욕실용 자재를 진열하고 있는 건축자재 취급상가와 철물상가, 가구상가 등이 몰려있다. 이 지역에 건축자재상이 몰려있는 것은 6·25전쟁 때 을지로 지역이 크게 파괴된 관계로 재건이 활발했기 때문이며, 그 후 1960년대부터 도시개발과 건물 신축이 유행하면서 발판을 굳혔고,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강남개발과 1990년 초의 신도시 건설의 붐을 타고 호황을 누렸다. 현재 이곳에는 을지로동주민센터를 비롯하여 인테리어·건축자재·조명관련 상가와 인쇄소·출판사 등이 밀집되어 있다.
역사정보 조선 초기 한성부 남부 훈도방(薰陶坊)과 성명방(誠明坊)에 속함 일제강점기 황금정3정목(黃金町三丁目) 1946 을지로3가 동명제정
시대분류 현대/1946(동명제정)
주제분류 문화/생활양식/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3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3가
시작일(발생일) 1946년(동명제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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